Simple Life2018.04.27 16:30

대한항공 오너 가족들이 거칠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제법 들려왔었다. 그런데 그게 뉴스로 다뤄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땅콩회항 사건이야 공적인 장소에서 있었던 일이라 그리 문제가 됐다. 그런 분들이 뭐하고 사는지 대중들에게 보일 일 없으니 뭔가 터져나오려면 누가 폭로를 해야 한다. 근데, 억울한 일 당했다 쳐도, 자기 밥줄 걸고 그러기가 쉽나.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자 비슷한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면 당연히 얻어지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져나왔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싶다가도, 이런 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측은하다. 사실 워낙 영향력 있고, 전력이 있는 집안 사건이라 이리 이슈화가 되었지, 아니었으면 알려지지도 않았을게다.

한국을 두고, 돈만 많으면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 내가 보기에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국보다 훨씬 살기 좋은 동네다. 한국은 힘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 괴롭히는걸 제지할 방법이 없는 나라다. 약자들에게는 갚아줄 수단은 커녕 방어수단도 없다. 갑에게 쌍욕을 쳐들었다고 치자. 뭐 어쩔건가? 더러워도 참는 수 밖에. 욕 좀 들은걸 법으로 해결보기도 어렵다. 증명도 어렵고, 시간도 돈도 많이 들지만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깽값 물어줄 각오 하고 주먹으로 갚아줄래도 그쪽이 쪽수가 더 많으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1:1로 붙어도 이길 확률은 대충 50%일텐데 말이다.

이래서인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약한 사람이 알아서 기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온갖 모욕을 당해도, 애초에 ‘알아서’ 조심하지 못한 피해자 탓이란다. 강자가 이런 소리 하는거야 이해는 간다. 이게 ‘기어야’ 될 일 없는 지네들한테 편하니까. 약자들조차 이 소리에 동조하는게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게 학습된 무기력에서 나온 방어기제라는 걸 알게 됐다. 하기사 뭘 어쩌겠는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겠나. 상대에겐 털끝만한 상처도 주지 못하고 산산히 깨져나갈게 뻔하니 말이다.

내가 끝내 적응할 수 없었던 게 한국에 하나 있다. 바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나쁜가에 대한 정의이다. 나쁜 짓 하면 악이고, 착한 일 하면 선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좀 다르더라. 피해를 보는게 악이고, 그걸 피해가는게 선이다. 피해자는 악인이다. 무슨 Risk-neural pricing도 아니고 이 쉬운 개념에 왜 정의가 두개냐.

이 기준을 들고와 피해자를 괴롭히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진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어떻게, 어떤 상황에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절대선을 추구하여 이데아를 구현하고 사는지, 우쭐한 표정으로, 설파하는 인간들을 한두번 본 게 아니다. 그때마다 상대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느낀 감정은 측은함에다 앞으로 이런 새끼가 내 인생에 엮이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저런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세상은 어떤 꼴일까? 약자에게는 기상천외한 엄한 잣대가 강제되지만, 강자는 맘껏 꼬장부려도 별 탈 없는 사회다.

미국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희대의 밸런스 붕괴 아이템, 총이 있으니까. 실컷 놀려먹은 후에 ‘억울해 죽겠지?’하고 조롱하는거, 미국에서는 하지 마라. 억울해 죽을만큼 분한 피해자가 ‘이새끼 죽이고 내 인생 종 칠란다.’ 이렇게 나올 수 있다. 제버릇 개 못주니까 그런 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을텐데 그 중에 저런 또라이 한둘 없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실제로 몇해 전 시카고 다운타운의 어느 회사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직위 강등당한 사람이 일터에 총들고 들어와 보스를 쏴죽이고 자살했다.

약한 것 괴롭히기. 어쩌면 이게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의 강함은 본능을 억누르는데서 왔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본능을 제어하는 수많은 규범이 생겼고, 호모 사피엔스는 온 지구를 정복했다. 얼마나 성숙한 문명인가를 보는 방법인 여러가지가 있겠지. 본능을 어떻게 억제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동네가 더 문명화된 곳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을거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안전한 한국이 야만적이고, 총이 돌아다니는 미국이 더 문명화된 사회다.

나도 한국에서 저런 꼴 당했다. 그 중엔 제법 소문 비슷하게 퍼져나간 것도 있었다. 내 귀에 돌아왔을 땐 ‘피해자 탓하기’ 버전으로 바뀌어져 있더라. 뭐 한 10년 쯤 지나서 내가 멋진놈이 된 버전도 들려오긴 했다. 당시의 내 미래에 대한 Plan A도 미국에 오는 것이어서 이러나 저러나 한국을 떠나기는 했겠다. 미국에 사니까 참 좋다. 저런 꼴 당하지 않아서 좋고, 볼 일도 없어서 좋다. 세상에 그런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잊고 산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가끔 생각날 땐 안타까운 느낌이다. 익숙한 얼굴들도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야만에 꿈을 꺾어야 했을까. 이러니 세계의 인재들이 알아서 미국으로 모여드는 것 아니겠나. 거기에 나같이 애매한 놈도 껴서 오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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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kowitz
Simple Life2018.04.14 08:44

미국 생활의 한가지 단점은 총기 사고에 대한 걱정이다. 시카고가 이쪽으로 둘째라면 서럽지. 내가 사는 동네는 꽤 안전하다고는 하는데, 최근 강도 사건이 몇개 있었다. 총기 규제가 좀 잘 된다면 훨씬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총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좀 과격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다른 학문은 어떤지 모르겠다. 공학이나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어떤 현상은 그 현상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거다. 하나의 사회가 돌아가는 데는 moving part가 많다. 그것들이 단기적으로는 역학적 equilibrium을 이루고 있다. 총기규제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에서 총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총기 범죄만 빼고 다른게 그대로 있을 리는 없다. 미국 사회는 새로운 균형을 찾거나 blow up할 것이고 그 결과는 단순하지 않을거다. Y = ax + b로 설명이 되는 것은 드물다. 공학에서 Taylor expansion과 미분방정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다보니 뭘 해도 자꾸 비교가 된다. 미국 사회의 큰 장점이라고 여기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미국 사람들은 정직하다. 기본적인 예의도 몸에 배여 있다. 미국의 역사와 문화 등등이 이런 배경을 제공했을거라고 믿는다. 비약일지는 모르나, 총기도 무시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총이 흔했다면, 아마도 죽었을 사람들이 좀 떠올라서 말이지.

한국에서 어느 높으신 분이 말이야. 법적인 사기는 아니지만 거짓말을 존나 해서 사기를 쳤단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자살. 미국이었다면 그분은 그리 높아지기 전에 진작 밥숟가락 놨다. 자살하는 마당에 나한테 좆같은 짓 한놈 쏴 죽이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 어느 유명한 전직 PD도 백주대낮에 칼을 맞은 적이 있다. 사기를 쳤다가 피해자가 칼을 휘둘렀다네. 그 죽어도 싼 PD는 한국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미국이었으면 칼 대신 총이었을거다. 구할 수 있는 칼이래봐야 부엌칼 정도일텐데, 이걸로 사람 한방에 골로 보내기는 굉장히 어렵다.

한국에서는 법만 살짝 피하면 사기를 당해도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법도 사실 좀 허술한 데가 있고 처벌도 약하고 말이지. 그러다보니 사기도 흔하고, 상대를 기망하는 일은 더 흔하다. 그런데 여기 미국 사정은 좀 다르다. 사기에 대한 처벌이 강력한데다, 법도 촘촘하다. 그게 살짝 이해는 되는게, 사기가 처벌받지 않으면, 살인을 걱정해야 될테니까.

여기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 일을 해도 속여먹을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을 의심하는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상황과 비교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의심 덜 했다가 뒤통수 후드려 맞은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알아서 내가 조심해야 하고, 기망당하면 오히려 피해자를 탓한다. 근데 여긴 씨발놈보다 거짓말쟁이가 더 심한 욕인 세상이다. 사람을 의심하는데 에너지를 덜 쓰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 다음으로는 총맞을 후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분들 되시겠다. 조롱, 갑질 이런거 잘하시는 분들 말이다. 얼마나 많냐. 자살할만큼 괴롭히는 일도 뉴스에 나오고 말이야. 이 원인을 문화적 배경에서 찾는 사람도 봤고, 아마 맞는 구석이 있을거다. 그런데, 문화가 어쨌건, 한국에 총 있었으면 저런 일 싹 사라진다. 좆같은 새끼들이 왜 저지랄이냐 하면, 저래도 자기가 피해보는게 없기 때문이다. 눈 앞에 몽둥이만 내려놔도 꼬리를 내리는게 양아치들 본성이다.

몇해 전 한국에서 내가 충격받은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단식하는데 앞에서 극우 쓰레기들이 폭식투쟁이라며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조롱했단다. 본인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고,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닌 사람들 아닌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리도 잔인하게 조롱하고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뭐 이유가 있긴 있지. 재밌으니까 그랬겠지 뭐. 그런데 그런 재미는 미국에서는 못본다. 목숨 걸고 그 짓 해라 그러면 몇놈 안남겠지.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도 여기서 수모를 당한 일도 여러번 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말이다. 나는 대부분 한국사람들한테서 당했다. 참 신기하지. 난 한국 사람들하고 거의 어울리지 않는데 어찌 이런 일은 다 한국 사람들한테서 왔을까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 사이에는 문화와 행동 양식에 차이가 분명 있다. 이게 역사와 문화가 더 성숙해서 그럴 수도 있다. 총 때문이라는 내 가설은 지나친 면이 있을게다. 허나 자꾸 총 생각이 나는건 이 차이가 제법 커서이다.

미국 애들이 자유분방한 건 맞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칼같이 지킨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삼가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만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쉽게 아이의 머리도 쓰다듬고 볼도 만진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허나 미국 애들은 아무리 친한 사람 아이라도 부모가 안겨주기 전까지는 아이를 만지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가끔 아이를 만지는 걸 싫어하는 부모가 있어서란다. 한국 사람들과 행동 양식이 너무 달라서 그 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즉 총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뭐 좀 지나친 비약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총기를 보급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기껏 잡아놓은 equilibrium이 무너지면서 아주 많은 문제가 생기리라고 본다. 난 미국에서 갑자기 총기가 없어지는 것도 equilibrium이 무너지는 건 마찬가지이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거고.

여기 친구들도 빡센 총기규제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총기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내가 사는 시카고 같은 대도시는 미국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옆집 갈래도 차타고 가야 하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그런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총기를 소지하는게 이해는 된다.

근데 이 대도시에서 총이 왜 필요하냐. 몰아내야 될 늑대 무리가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도시에서라도 총기를 금지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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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kowitz
Simple Life2018.02.17 10:59

그해 겨울
미국에서의 첫번째 겨울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친구도 없고 하던 중에 친해진 형을 따라 스노우보드에 입문하게 됐다. 난 원래 스키어지만 장비와 옷은 한국에 두고 왔기 때문에 새로 장만해야 할 처지였다. 이왕 새로 갖춰야 하는데 새로운 종목에 도전해보는게 좋은 생각이기도 했다. 게다가 형님께서 가르쳐주신다고도 하니까 이 기회를 놓치기도 어려웠다.

내가 스키를 배울 때 헤르만 마이어가 이상적인 모델이었듯이, 스노우보드를 배우는데 최고의 선수를 따라해봐야 하지 않겠나. 바로 그 선수는 숀 화이트. 난 오클리에서 숀 화이트 시그너처 고글을 봤고, 두번 생각하지 않고 샀다.

다음 겨울,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있었다. 카메라는 겨울 최고 스타를 비추고, 난 몸푸는 그를 보고는 얼어붙었다. 숀 화이트가 쓴 것은 숀 화이트 시그너처 고글이 아니었다. 오클리는 오클리였는데, 색깔이랑 렌즈가 달랐다. 굳이 가격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훨씬 싼 기본적인 렌즈였고, 단일 색상 프레임이었다.

뭐랄까 참… 산뜻하게 엿먹은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숀 화이트는 고글이 어쨌거나 말거나, 간지 철철 넘치는 모습으로 하이프이프를 내려갔다. 난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하기사, 무슨 최첨단 기능 따위 고글에 무슨 상관이람. 그런것 사용한다고 기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이 당연한 걸 지금도 가끔 헷갈린다.

미국인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법
2004년 동계 올림픽에서 숀 화이트는 여전히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근데 웬걸, final round에서는 평소보다 영 못했고, 메달도 못땄다. 그 올림픽 최고의 퍼포먼스는 예선에서의 숀 화이트였다. 그정도만 했어도 우승을 했을텐데 본인으로써도 퍽이나 아쉬웠겠지.

경기가 끝난 후에 인터뷰 하는 모습을 봤다.
“3연패를 노리고 있었을텐데 아쉽지 않나요?”
“저는 4연패를 노리고 있었어요. …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보죠 (It wasn’t my day).”
상대를 의연하게 인정하고, 본인의 불운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거나 격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았다. 쿨했다. 너무나 쿨했다.

또하나 내가 인상적으로 느낀 것이 미국인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해서 펼치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물론 nationality가 약간은 개입해 있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관심이다. 관심도 없는 종목에 단지 본인 국적의 선수가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 갑자기 흥분하는 사람은 못봤다. 본인 국적의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나라가 흥하고, 혹시라도 미끄러지면 본인이 중요한 시험이라도 망친 듯 오버하는 모습 역시 없다. 왜냐하면, 담백하게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선수가 메달을 따면 그에게 좋은 일이지, 나하고는 별 상관 없는 일이다.

난 이 사실을 어릴 때 알았다.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을 했는데도, 내가 마주해야 할 비루한 일상은 그대로였다. 내가 왜 그리 목놓아 응원을 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태도를 한국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응당 내가 룰도 잘 모르는 종목의 처음 보는 선수를 응원해야만 한다.

이런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숀 화이트가 메달을 못딴 이야기는 화제였다. 거의 유일하게 점심시간에 수다 떨다 나온 올림픽 이야기였다. 숀 화이트가 워낙 대단한 스타이기도 하고, 스노우보드 또한 가장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라 그런 것 같다. 그들 역시 쿨하게 받아들이더라. 최고의 선수인건 분명하지만 그날 운이 좀 없었나보지 하고 말더라고. 혹여 한국의 빙상스타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분위기는 퍽이나 달랐겠지.

역시 대단한 선수
지난 화요일, 평창발 뉴스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또다시 숀 화이트가 우승을 했단다. 라이브로 봤다면 얼마나 흥분됐을까. 뒤늦게 찾아본 영상을 보니, 이건 뭐 금메달일 수 밖에 없더라. 여유와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비장함. 해설자의 말대로 the biggest run in his life였다. 마지막 착지를 마치고 포효하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알았던 것 같다. 지난 올림픽에서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초조해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금메달은 금메달이고, 역사상 최고의 epic run이 아니었을까 싶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마침 하프파이프 상태도 받쳐줬기 때문에 과감히 최고의 기술을 시도했던 것이지 않았을까. 소치 올림픽 때는 하프파이프 상태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꼼꼼한 한국 사람들이 이 국가적인 행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치뤄낼지는 짐작이 간다. 결과적으로 하프파이프가 완벽이란다. 이건 해설자들도 칭찬하더라. 최고의 멍석이 깔렸기 때문에 초일류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었겠지.

환희의 눈물을 쏟아내는 그를 보니 그가 느끼고 있을 감정의 크기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걸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 제작년 르브론 제임스가 우승했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심장과 눈물 피와 땀, 모든 것을 바쳤다.”

아 썅 진짜 멋있었다. 싸나이가 이렇게 함 살아봐야 되는건데. 난 무엇에 열정을 불살라봤나. 몇개 생각이 나긴 하는데 어디다 자랑할만한 건 하나도 없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멀쩡한 걸 해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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