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미국 치질 수술 후기

참 민망한 고백을 하게 됐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될지 모르는 일. 익명으로 글을 쓰는게 이럴 때는 편하네.


치질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내가 걸린 건 ‘치핵’이란다. 똥 쌀 때 뭔 혹 같은게 밖으로 딸려나와서 가끔 피도 나고 하는 난치병이다. 몇년 전 한국 갔을 때 이미 3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뜻이지.


수술할 전문의 찾기

먼저 치질수술을 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의료보험을 선택하기 때문에 내가 겪은 과정이 꼭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난 PPO라고 불리는 보험을 갖고 있는데, 일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공짜로 받게 해준다. 이걸 해주는 의사를 Primary Care Doctor라고 부른다. 주치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뭔 일이 생기면, 이 주치의에게 먼저 가야 된다. 주치의가 먼저 살펴보고 처방을 해주는데, 수술이 필요하다거나 하면 레터를 써주고는 전문의에게 보낸다. 미국이란 나라는 뭐든 신용, 추천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한국에서처럼 그냥 동네 전문의에게 바로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수술 날짜 잡기

추천받은 전문의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유명한 것 같았다. 약속을 잡고 한번 만났는데, 뭐 그냥 수술하기로 했다. 늘어진 혹을 잘라내는 거다. 가장 기본적인 수술법이라네. 의사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또 남의 손가락이 똥꼬에 훅 하고 들어오는 기분은 참 뭐라 설명하기 어렵더라. 하지만 이왕 수술하기로 결심한 이상, 이정도는 각오하고 왔다.


수술 당일

전날 밤 12시 이후로는 물 마시는 것도 금지다. 난 일찌감치 저녁 8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수술은 오전이었다. 그 전에 오줌도 눠버리고, 똥도 쌌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곧 링거를 꽂고 마취약이 들어오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슬며시 깼을 때는 2시간 여가 지난 후였다. 회복실이었는데, 마취약 때문에 거의 정신이 없었다. 아프지 않냐 물어는 보는데, 온 몸이 마취약에 쩔어서 뭐... 곧 난 원래 있던 병실로 옮겨졌다. 허리 근처를 세게 마취시킨 모양인데, 그래서 오줌을 제대로 한번 싸야 집에 보내준단다. 거의 4시간을 자다말다 하면서 병실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오줌도 싸고 의사도 만났다. 정신이 없어서 뭔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도 잘 안난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수술하면 3일동안 입원시킨다는데, 여기선 그냥 바로 내보낸다.


와병 2일째

마취약이 아직 몸에 많이 남아 있는지 머리가 아프고 속도 니글거렸다. 이러니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밥은 오트밀에다가 샐러리와 당근이다. 이날부터 네가지를 꼭 챙겨야 한다. 진통제, 연고, 변비약, 좌욕이다. 좌욕하는 대야는 아마존에서 대충 $10 정도 주고 샀는데, 이걸 허구헌날 해야 한다. 첫 방귀가 나왔는데, 피가 스프레이처럼 뿌려지더라.


와병 3일째

어제와 별반 다를 거 없다. 좌욕을 많이 하려는데, 아직 머리도 아프고 해서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다. 하루종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봤다.


와병 4일째

똥을 못눈지 만 3일째다. 슬슬 불안해졌다. 똥은 좀 마려운데 나오질 않는다. 병원에 전화를 해봤는데, 사흘째 이러고 있는 건 흔한 일이란다. 일주일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네. 내일까지 못싸면 전화 또 하란다. 진통제를 끊어보라고 조언해주더라.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에다가 대장을 못움직이게 하는 약이 섞인 거란다. 하긴 많이 움직이면 아플테니. 그래서 처방받은 진통제 대신 아세트아미노펜을 먹기 시작했다. 밤 늦게 너무나 똥이 마려워서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겨우 염소똥만한 조각이 힘없이 떨어져 나오더라. 그거 싸느라 힘을 얼마나 줬는지 또 피는 피대로 나고. 그런데도 똥이 계속 마려워서 괴로웠다.


와병 5일째

오전에 처음으로 똥다운 똥을 쌌다. 헌데, 평소의 절반에 불과한 양이다. 아무리 힘을 줘도 더 안나오더라. 그거라도 쌌다고 또 똥꼬에서는 피가 났다. 똥은 계속 마려운데 똥을 싸자니 통증이 무섭고 잘 나오지도 않는다. 진퇴양난이 이런거구나. 똥 싸고나면 진통제부터 챙겨먹어야 된다. 아내 말로는 똥꼬가 좀 찢어진 것 같단다.


와병 6일째

대장이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똥을 두번이나 쌌다. 그런데 양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직 배에 똥이 가득 차 있어서 괴롭다. 똥을 제대로 못싼다는게 이렇게 괴로운 건지 몰랐다. 게다가 쌀 때마다 얼마나 아픈지. 마음 굳세게 먹고 ‘똥꼬 따윈 찢어져도 좋아’ 속으로 외치며 인정사정없이 힘을 줘야 한다. 입에서는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고 한동안 신음하겠지만 가야 할 길이다.


와병 7일째

어제와 다른 게 없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지난 일주일과 기초군사훈련 중에 고르라면 난 주저없이 훈련소로 향하리라.


와병 8일째

출근을 했다. 그런데 오전에 똥을 싸버렸다. 회사 화장실이니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온 몸을 베베 꼬며 고통을 참아내는 수 밖에. 뒷처리도 어렵다. 아직 똥꼬에 감히 손을 대거나 휴지를 댈 엄두가 안났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에는 비데가 있었는데 그게 참 좋은 거였구나. 그 때 치질수술을 했던 김모 팀장님은 나름 편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회상에 잠겼다. 난 휴지에 물을 묻혀 들어가서 해결했다.

똥싸고 난 후 통증이 너무 심해서 조퇴했다. 집에 와서 맘껏 비명을 지르며 못다 싼 똥을 밀어냈다.


와병 9일째

출근 전에 똥을 쌌다. 욱신거리는 똥꼬와 함께 만원 기차에 몸을 구겨넣었는데, 상당히 신경쓰이더군. 이날은 근무중에 똥을 싸는 참사를 피할 수 있어서 온종일 근무했다.


와병 10일째

통증이 약간 덜해진 느낌이다. 근무중에 똥을 싸고도 하루종일 버텨냈다.


와병 16일째

수술한지 만 보름이다. 그동안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의사를 만났다. 의도치 않게 의사를 보러 가기 전에 똥을 쌌다. 아무리 내가 잃을 것 없는 놈이라지만 똥묻은 똥꼬를 의사에 들이미는 것은 피하고 싶어서 물묻은 휴지로 아주 오랫동안 똥꼬를 닦아냈다. 의사는 경과가 좋다며 기뻐했다.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것들 물어봤는데 괜찮단다. 이날 같이 들어온 수련의는 여자였는데 뭐… 낫게만 해준다면야. 잘 아물어가고 있으니 다시 약속을 안잡아도 좋단다.


3주 정도 흐르자 통증도 거의 없어졌다. 이제 똥 쌀 때마다 흘러나온 혹을 다시 집어넣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똥 쌀 때 힘을 더 많이 줘야 된다. 아무래도 치핵을 2개나 잘라내서 그런 것 같다. 몸무게가 5키로나 빠졌다.


똥꼬에 뭔가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당장 의사에게 달려가라. 가능하면 약물치료로 막아야 된다. 나도 내가 치질 걸린 걸 오랫동안 몰랐다. 왜냐하면 치질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은 정말 심한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글링이나 친구 의사한테 물어보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꼭 의사에게 가보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이렇게 괴로울지 상상도 못했다. 나도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 받았을 때 의사에게 갔었다면 이런 사태까지는 안왔을 것이다.


치질수술 자체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을거다. 하지만 치료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게 궁금한 사람도 많을텐데, 이미 글이 많이 길어졌으니 그건 따로 다뤄봐야겠다.

반응형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질 걸린 사람들에게  (4) 2016.01.09
치질 수술비로 본 미국 의료  (0) 2015.12.30
안철수에게 실망했다  (0) 2015.12.25
예브게니 키신 형님 또 알현  (0) 2015.11.25
한국인 쇼팽 콩쿨 우승자가 나왔다  (2)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