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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라라 랜드


최근 수년간 본 영화들 중에 가장 좋았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돌려보며 즐길 것 같다.

 

지금의 아내와 함께하기까지, 나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지금까지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끔찍하기만 한 사람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참 사람 보는 눈이 없었지. 허나 ‘그때 그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우린 어떻게 돼 있을까?’ 이런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냥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가 있는게 아니다. 이런저런 일에 휩쓸리고 버텨보려 해보기도 했고 그 과정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난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도 헤어지기도 했다. 뭐 또 모르는 일이지. 나 혼자 착각하는지도. 폭풍우가 몰아치면 비 쫄딱 젖는 것만큼이나 필연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난 지난 일에 욕은 할지언정 미련을 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번도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나 대신, 이 영화는 주인공의 머리를 빌려 대신 보여준다. 처음 보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더라면, 돈이 궁하다고 친구의 밴드에 참여해서 투어를 도는 대신 재즈바를 시작할 수 있었다면, 처음으로 시작하는 1인극이 관객으로 꽉 차고 열렬한 환호를 받았더라면, 그래서 우리의 꿈이 바로 이뤄졌더라면, 지금까지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내 모든 인생과 추억에 니가 있을텐데.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해고통보를 받고 쫓겨나오는 길에는 처음 본 여자와 사랑에 빠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렌트도 밀리고, 여자친구의 부모님에게 놈팽이 취급을 받는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밴드를 거절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카페에서 알바나 하던 아가씨가 혼자 뚝딱 만든 1인극이 처음부터 히트를 치는 건 소년만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법 하다. 그들의 꿈은 바로 이뤄질 수 없었다. 그는 투어를 돌아야 했고, 그녀는 파리로 떠나야 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내 인생이 바라던 대로 풀렸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태클만 좀 안걸렸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내 이런 가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승냥이 소굴에 떨어진 주제에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겠지. 내게 일어난 일은 필연이었다. 그 사고 때문에 난 꿈은 커녕 플랜 B도 C도 아니었던 걸 하고는 있지만 대충 내 삶의 질에 만족하고 있다. 지금의 아내도 만날 수 있었고. 그게 투어를 돌거나 파리에 가는 것처럼 꿈으로 가는 과정이었다며 좋았겠지만 말 그대로 사고였으니까.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몰라 들떠 있던 시절이 나도 있었다. 그때는 꿈을 가지는게 젊음의 특권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지금은 뭐… 회사 다니는 건 생계수단이 된지 오래다. 그 불안한 희망에 차 있던 시절,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써 훌륭한 인생의 보석이 아닌가 싶다. 그 경험을 통해 꿈에 도달할 수 있었다면 더 좋고.

 

각자의 꿈을 이룬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을 보며 나 또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공유했다. 고작 $6짜리 조조할인 티켓으로 이런 기회를 선사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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