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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기다렸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이가 태어나는 걸 봤을 때 느낌은 뭐랄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이게 정말인지 이게 정말 내 아이인지.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울음을 그쳤을 때야 비로소 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다. 우리 부부가 하나하나 준비한 공간에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 조그만 생명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뭐든 다 해주고 싶어졌다.

감격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태어난 아기를 보는 순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좀 부어 있고, 구겨진 느낌이었다. 아내 말로는 나를 너무 닮은게 탈이란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갓난아기는 못생긴게 정상이라고 한다. 지난 10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으니까 좀 불어 있는게 이해가 된다. 태어나서 며칠동안 붓기가 빠지고, 물기도 빠지면서 체중의 2-3%가 빠진다. 그 며칠 지나고 나니 많이 달라 보인다.

처음 일주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어난지 하루 이틀 지났을 때는 나았던 것 같은데,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광고에는 애 재워놓고 책도 보고 밥도 잘 먹던데, 내 아이는 왜 내려놓기만 하면 울까. 처음에는 침대가 불편해서 그런줄 알았다. 비싼 매트리스와 침대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수백만년 전 인류가 나타나서 집을 짓고 산지는 고작 오쳔년이다. 그 전에는 숲에서 단체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영아에게는 부모에게서 떨어져 있는 건 곧 죽음이나 다름 없었겠지. 동물원 원숭이 새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인류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 같다.

아기의 생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은 이쯤 해두고, 우리에겐 실존적인 문제가 있다. 갓난애기를 돌보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않아서 너무나 힘이 든다. 안고 자다가 실수로 애를 잘못 다룰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도 났다.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는데 별 뾰족한 수는 없더라. 세달 정도 지나면 나아진다고 하는데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힘든 것과는 별개로, 아이가 점점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스티비 원더 형님이 딸 아이를 얻었을 때 만든 Isn’t she lovely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하나 하나가 다 와닿는다. 나를 닮았으니 예쁠 리는 없는데도 너무나 귀엽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눈 앞에 아기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고, 아이를 다시 안은 순간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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