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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미국에서 출산하기

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 스스로 조사해본 것은 많지 않다. 여기서는 산부인과 의사, 정확히는 산과 의사를 OB doctor라고 한다. 아내의 담당 OB doctor를 정해서 병원을 다녔다. 주기적으로 가서 초음파, 각종 검사 등등을 했다. 난 아내와 아기만 건강하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질문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내가 다니는 병원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는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이를 실제로 낳는 곳은 따로 있더라고. 듣기로는 아이를 낳는 병원도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난 그냥 OB doctor가 시키는대로 했다. 여기 전화해서 예약하고 등록하고 하세요 하면 그대로 한거지. 알고 보니 아내가 출산한 병원은 다른 곳에 비해서 좀 비싼 곳이었다. 아마도 보험회사에서 돈을 내주니까 OB doctor도 병원비 생각하지 않고 그 병원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입장에서도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같은데 다른 곳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 마침 거기가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약간 당황스럽지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사실이 있다. 아내의 담당 의사가 아기를 받아주는 의사가 아닐 수 있다.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데 담당 의사가 항상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겠지. 진통이 시작되길래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더니 당직을 서고 있는 의사가 아기 낳을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역시 이 당직 의사는 아내의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 병원이 집에서 가깝다는 사실이 참 좋더라.

 

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속 후에 우리를 아이를 낳을 병실로 올려보냈다. Labor room이라고 한다. 언뜻 봐도 여러 장비가 많이 갖춰져 있는 큰 방이었다. 여기서 아이를 낳고 별 문제가 없으면 다른 작은 방으로 옮겨진다. 아무래도 각종 장비가 갖춰진 방은 비쌀 것이니까 집중해서 관찰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면 그냥 쉴 수 있는 방으로 보내는 것 같다. 만약 문제가 좀 있다고 하면 그 큰 방에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머무르게 되는 것 같다.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간호원이 자주 들여다봐줘서 좀 편했다. 기저귀도 갈아주기도 하고 밤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돌봐주기도 하더라. 아기가 심하게 울거나 젖먹일 시간이 되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만 좀 쉴 수가 있었다. 젖먹이는 세미나에 가기도 했고, 이런 저런 할 일들이 있어서 여유롭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병원 음식이 훌륭했다. 정신이 없다보니 끼니를 거르기 쉬운데 챙겨먹을만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산모 식사는 병원비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고. 그렇게 이틀밤을 보내고 나면 아이와 함께 퇴원이다.

 

난 한의학과 민간요법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산후조리에 대한 속설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지만, 알아도 무시했다. 병실부터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다. 아기에게 이상적인 온도는 성인이 좋아하는 온도보다 좀 많이 낮더라. 그래서 옷을 껴입고 지냈다. 미역국도 챙겨먹지 않았다. 아내도 병원에서 나온 미국 음식을 좋아했다. 아내가 처음 며칠간은 가끔 진통제를 챙겨먹었지만, 일주일도 안되어서 쇼핑도 나가고 산책도 잘 다녔다. 아이가 태어난지 나흘이 되던 날에는 소아과에 가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되기도 하고. 아무래도 한국의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속설이라는 게, 못먹고 못살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현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치료가 필요한 산모들에게는 병원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 그러고는 어마어마한 돈이 청구되겠지. 어차피 보험사가 내주겠지만.

 

몸이 아프면 의료인의 손길이 필요하고, 일이 많으면 도우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돌보는 걸 도와줄 사람이었다. 너무나 힘들었다. 만약 장모님이 와계시지 않았다면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갔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내도 하루종일 애를 보고 있으니 힘들고, 좀도 쑤신 모양이더라. 그래서 매일 내가 퇴근하면 한참동안 나가 있다 왔다.

 

아이를 돌보는데 도움을 받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Daycare와 nanny다. 하루종일 손길이 필요한 신생아의 특성상 daycare에서 아이를 얼마나 잘 돌봐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에서 돌보거나 nanny를 고용한다. Nanny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입주해서 하루종일 애를 봐주는 사람과, 낮에만 봐주는 사람, 그리고 밤에만 봐주는 사람이다. 낮에만 봐주는 사람이 제일 흔하고 그나마 싸다. 나머지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후덜덜한 비용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nanny는 아니지만, 아이는 엄마가 돌보고 집안일을 도와주실 분을 고용하는 경우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우리가 직접 돌보고 있다. 앞으로는 어찌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대로 좀 지내보고 사람을 고용하든, daycare에 보내야겠지.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 보는게 익숙해진다. 밤에도 조금씩 오래 자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아마 몇달 후부터 daycare에 보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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