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산후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이해가 된다

육아는 참 힘든 일이다. 난 내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손에서 떨어지기만 해도 우는 아이를 보는 건 고되다. 그런데 우리 애만 이런 것 같진 않다. 대충 갓난 아기들은 다 이런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부부가 겪고 있는 일을 똑같이 겪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난 퇴근 후에만 아이를 본다. 집에 일찍 오는데다 내가 많이 안고 있긴 한다. 허나 아내와 아이를 같이 보니까 좀 수월한 면이 있을 것이다. 반면 아내는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다. 아직 의사소통은 커녕 그저 울고 밥먹고 안겨서 자는게 다인 갓난 아이다. 요즘 아내가 겪는 스트레스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정도일 것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면 사고가 난다. 그래서 육아의 스트레스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가 사회면을 장식하는 것 같다. 아내도 아이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이유 없이 심하게 우는 아이가 미워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퇴근 후에 가능하면 아이를 많이 보는 것, 그리고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어제도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녀석은 아기 때는 대가족으로 살았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가끔 3대가 모여사는 집이 있었지. 그런 집이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조부모님댁에서 독립해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의 가족이 떨어져 나온 순간, 지옥문이 열렸다. 지금 기준으로 치면 아동학대를 당하기 시작한거다. 가해자는 아주머니, 그 친구의 어머니 되신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야 뭐 아주머니께서 조부모님과 사실 때는 좀 참고 사시다가 이제 말릴 사람이 없어서 그랬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시나리오가 하나 그려졌다. 실제 일어난 일이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아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할머니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귀엽기도 하고, 서툰 딸을 도와주고 싶었을테니까. 그렇게 할머니 품이 익숙한 아이가 갑자기 할머니와 떨어지게 되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였으니 할머니를 찾아서 울고 보채는 게 자연스레 그려진다. 반면 어머니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자기 손으로 육아를 해야만 한다. 갓난아이는 벗어났더라도 여전히 보호자의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아닌가. 갑자기 이런 아이를 자기 혼자 책임져야 하는데 그 워크로드의 차이는 본인이 상상한 것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낮선 환경에 익숙한 보호자 없이 떨어진 아이와 갑자기 육아를 혼자 담당하는 엄마. 이거 뭐 아이나 엄마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우는 아이가 할머니와 있을 때처럼 잘 달래지지 않았겠지. 엄마 입장에서는 이유 없이 운다고 생각할거고, 애가 미워보일 수 있었겠다 싶다. 본인도 환경이 바뀌니 짜증나는 일 많을텐데 애까지 마음대로 안되고, 그래서 애한테 화풀이 좀 하다보면 애 입장에서는 이게 또 무슨 날벼락인가. 갑자기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느낀게 백번 이해가 된다.


이건 좀 극단적인 오시범이긴 하다. 허나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인생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매일 왕복하는 아현고가도로에서 타고 있는 버스가 떨어지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갓난아이. 이렇게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사는게 목표인데, 아내 상태가 안좋아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퇴근 일찍 하고, 휴가도 좀 자주 쓰고, 먹고 싶다는거 좀 잘 사주고. 그렇게 아이를 돌봐서 이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겨야겠다.

반응형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Summer of ‘17  (0) 2017.10.10
리테일의 몰락  (0) 2017.10.10
미국에서 출산하기  (0) 2017.08.09
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  (2) 2017.07.28
세속적인 목표  (4) 2017.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