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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한비야씨 책에 대한 기억

난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를 돌아보면, 입시 준비에 매달려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책을 읽으면서 지냈다. 대학교 시절 어떤 사람이 읽어보라며 던져준 책이 한비야씨의 여행기였다.

난 그 책을 끝내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한비야 책에 있는 에피소드 이야기를 할 때 보면 아는 내용이 많은 것으로 봐서 제법 많이 읽다 덮은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 여행기에 대해서 내 감상을 말해볼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비야씨의 책은 흥미로웠다. 내 짧은 인생에서 경험해본 여행과는 차원이 달랐으니.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책의 내용들이 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듯 했다. PC 통신에 돌아다니던 글과 비슷해 보였다. 당시 PC 통신에는 심한 과장 또는 허위가 섞여 들어간 글들이 많았다. 뭐 지금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글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아마추어들이 남들 이목을 끌어보려고 하는 짓이란 게 뭐 비슷하겠지. 잘 훈련된 소설가들의 글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내가 정성적이나 정량적으로 그런 패턴을 정리해본 적은 없지만, 한비야씨의 글에서 그런 걸 본 것 같다.

그 후로는 책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어야 하는지 정당화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뭔가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삶의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글솜씨가 감탄할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니. 다른 책들 대신 이걸 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 식으로 잊은 수많은 다른 책들처럼 말이다.

한두해나 지났을까. 한비야씨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걸 봤다. 그제서야 그때 읽다 덮은 책을 기억해냈다. 신기했지만, 잘못된 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알맹이 없는 베스트셀러 한두번 본 것도 아니니. 그런데 한비야씨 개인의 인기가 덩달아 높아지더니, 나같은, 젊은이들의 멘토 비슷한 대접을 받더라. 아직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몰랐던 시절이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요일 아침, 아직 아기가 깨기 전,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뒹굴거리며 한국 뉴스를 보다 한비야씨 소식을 봤다. 현재 어느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며 지내시는 모양이다. 거기서 만난 분과 결혼을 하신다네. 뭐 나름 성공한 삶인 것 같다. 내가 결혼했을 때는 뭐.. 뉴스는 커녕, 왜이리 소리소문 없이 결혼했냐 소리까지 들었는데. 사람이 사는 방법은 한두가지가 아니고 삶이 평가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연못에 던져진 짱돌마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덕분에 옛날 생각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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