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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총기의 순기능

미국 생활의 한가지 단점은 총기 사고에 대한 걱정이다. 시카고가 이쪽으로 둘째라면 서럽지. 내가 사는 동네는 꽤 안전하다고는 하는데, 최근 강도 사건이 몇개 있었다. 총기 규제가 좀 잘 된다면 훨씬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총기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좀 과격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다른 학문은 어떤지 모르겠다. 공학이나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어떤 현상은 그 현상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거다. 하나의 사회가 돌아가는 데는 moving part가 많다. 그것들이 단기적으로는 역학적 equilibrium을 이루고 있다. 총기규제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에서 총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총기 범죄만 빼고 다른게 그대로 있을 리는 없다. 미국 사회는 새로운 균형을 찾거나 blow up할 것이고 그 결과는 단순하지 않을거다. Y = ax + b로 설명이 되는 것은 드물다. 공학에서 Taylor expansion과 미분방정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다보니 뭘 해도 자꾸 비교가 된다. 미국 사회의 큰 장점이라고 여기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미국 사람들은 정직하다. 기본적인 예의도 몸에 배여 있다. 미국의 역사와 문화 등등이 이런 배경을 제공했을거라고 믿는다. 비약일지는 모르나, 총기도 무시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총이 흔했다면, 아마도 죽었을 사람들이 좀 떠올라서 말이지.

한국에서 어느 높으신 분이 말이야. 법적인 사기는 아니지만 거짓말을 존나 해서 사기를 쳤단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자살. 미국이었다면 그분은 그리 높아지기 전에 진작 밥숟가락 놨다. 자살하는 마당에 나한테 좆같은 짓 한놈 쏴 죽이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 어느 유명한 전직 PD도 백주대낮에 칼을 맞은 적이 있다. 사기를 쳤다가 피해자가 칼을 휘둘렀다네. 그 죽어도 싼 PD는 한국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미국이었으면 칼 대신 총이었을거다. 구할 수 있는 칼이래봐야 부엌칼 정도일텐데, 이걸로 사람 한방에 골로 보내기는 굉장히 어렵다.

한국에서는 법만 살짝 피하면 사기를 당해도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법도 사실 좀 허술한 데가 있고 처벌도 약하고 말이지. 그러다보니 사기도 흔하고, 상대를 기망하는 일은 더 흔하다. 그런데 여기 미국 사정은 좀 다르다. 사기에 대한 처벌이 강력한데다, 법도 촘촘하다. 그게 살짝 이해는 되는게, 사기가 처벌받지 않으면, 살인을 걱정해야 될테니까.

여기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 일을 해도 속여먹을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을 의심하는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상황과 비교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의심 덜 했다가 뒤통수 후드려 맞은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알아서 내가 조심해야 하고, 기망당하면 오히려 피해자를 탓한다. 근데 여긴 씨발놈보다 거짓말쟁이가 더 심한 욕인 세상이다. 사람을 의심하는데 에너지를 덜 쓰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 다음으로는 총맞을 후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분들 되시겠다. 조롱, 갑질 이런거 잘하시는 분들 말이다. 얼마나 많냐. 자살할만큼 괴롭히는 일도 뉴스에 나오고 말이야. 이 원인을 문화적 배경에서 찾는 사람도 봤고, 아마 맞는 구석이 있을거다. 그런데, 문화가 어쨌건, 한국에 총 있었으면 저런 일 싹 사라진다. 좆같은 새끼들이 왜 저지랄이냐 하면, 저래도 자기가 피해보는게 없기 때문이다. 눈 앞에 몽둥이만 내려놔도 꼬리를 내리는게 양아치들 본성이다.

몇해 전 한국에서 내가 충격받은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단식하는데 앞에서 극우 쓰레기들이 폭식투쟁이라며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조롱했단다. 본인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고,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닌 사람들 아닌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리도 잔인하게 조롱하고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뭐 이유가 있긴 있지. 재밌으니까 그랬겠지 뭐. 그런데 그런 재미는 미국에서는 못본다. 목숨 걸고 그 짓 해라 그러면 몇놈 안남겠지.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도 여기서 수모를 당한 일도 여러번 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말이다. 나는 대부분 한국사람들한테서 당했다. 참 신기하지. 난 한국 사람들하고 거의 어울리지 않는데 어찌 이런 일은 다 한국 사람들한테서 왔을까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 사이에는 문화와 행동 양식에 차이가 분명 있다. 이게 역사와 문화가 더 성숙해서 그럴 수도 있다. 총 때문이라는 내 가설은 지나친 면이 있을게다. 허나 자꾸 총 생각이 나는건 이 차이가 제법 커서이다.

미국 애들이 자유분방한 건 맞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칼같이 지킨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삼가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만지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쉽게 아이의 머리도 쓰다듬고 볼도 만진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허나 미국 애들은 아무리 친한 사람 아이라도 부모가 안겨주기 전까지는 아이를 만지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가끔 아이를 만지는 걸 싫어하는 부모가 있어서란다. 한국 사람들과 행동 양식이 너무 달라서 그 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즉 총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뭐 좀 지나친 비약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총기를 보급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기껏 잡아놓은 equilibrium이 무너지면서 아주 많은 문제가 생기리라고 본다. 난 미국에서 갑자기 총기가 없어지는 것도 equilibrium이 무너지는 건 마찬가지이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거고.

여기 친구들도 빡센 총기규제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총기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내가 사는 시카고 같은 대도시는 미국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옆집 갈래도 차타고 가야 하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그런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총기를 소지하는게 이해는 된다.

근데 이 대도시에서 총이 왜 필요하냐. 몰아내야 될 늑대 무리가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도시에서라도 총기를 금지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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