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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갑질 사건 또 터졌네

대한항공 오너 가족들이 거칠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제법 들려왔었다. 그런데 그게 뉴스로 다뤄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땅콩회항 사건이야 공적인 장소에서 있었던 일이라 그리 문제가 됐다. 그런 분들이 뭐하고 사는지 대중들에게 보일 일 없으니 뭔가 터져나오려면 누가 폭로를 해야 한다. 근데, 억울한 일 당했다 쳐도, 자기 밥줄 걸고 그러기가 쉽나.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자 비슷한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면 당연히 얻어지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져나왔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싶다가도, 이런 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측은하다. 사실 워낙 영향력 있고, 전력이 있는 집안 사건이라 이리 이슈화가 되었지, 아니었으면 알려지지도 않았을게다.

한국을 두고, 돈만 많으면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 내가 보기에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국보다 훨씬 살기 좋은 동네다. 한국은 힘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 괴롭히는걸 제지할 방법이 없는 나라다. 약자들에게는 갚아줄 수단은 커녕 방어수단도 없다. 갑에게 쌍욕을 쳐들었다고 치자. 뭐 어쩔건가? 더러워도 참는 수 밖에. 욕 좀 들은걸 법으로 해결보기도 어렵다. 증명도 어렵고, 시간도 돈도 많이 들지만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깽값 물어줄 각오 하고 주먹으로 갚아줄래도 그쪽이 쪽수가 더 많으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1:1로 붙어도 이길 확률은 대충 50%일텐데 말이다.

이래서인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약한 사람이 알아서 기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온갖 모욕을 당해도, 애초에 ‘알아서’ 조심하지 못한 피해자 탓이란다. 강자가 이런 소리 하는거야 이해는 간다. 이게 ‘기어야’ 될 일 없는 지네들한테 편하니까. 약자들조차 이 소리에 동조하는게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게 학습된 무기력에서 나온 방어기제라는 걸 알게 됐다. 하기사 뭘 어쩌겠는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겠나. 상대에겐 털끝만한 상처도 주지 못하고 산산히 깨져나갈게 뻔하니 말이다.

내가 끝내 적응할 수 없었던 게 한국에 하나 있다. 바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나쁜가에 대한 정의이다. 나쁜 짓 하면 악이고, 착한 일 하면 선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좀 다르더라. 피해를 보는게 악이고, 그걸 피해가는게 선이다. 피해자는 악인이다. 무슨 Risk-neural pricing도 아니고 이 쉬운 개념에 왜 정의가 두개냐.

이 기준을 들고와 피해자를 괴롭히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진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어떻게, 어떤 상황에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절대선을 추구하여 이데아를 구현하고 사는지, 우쭐한 표정으로, 설파하는 인간들을 한두번 본 게 아니다. 그때마다 상대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느낀 감정은 측은함에다 앞으로 이런 새끼가 내 인생에 엮이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저런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세상은 어떤 꼴일까? 약자에게는 기상천외한 엄한 잣대가 강제되지만, 강자는 맘껏 꼬장부려도 별 탈 없는 사회다.

미국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희대의 밸런스 붕괴 아이템, 총이 있으니까. 실컷 놀려먹은 후에 ‘억울해 죽겠지?’하고 조롱하는거, 미국에서는 하지 마라. 억울해 죽을만큼 분한 피해자가 ‘이새끼 죽이고 내 인생 종 칠란다.’ 이렇게 나올 수 있다. 제버릇 개 못주니까 그런 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을텐데 그 중에 저런 또라이 한둘 없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실제로 몇해 전 시카고 다운타운의 어느 회사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직위 강등당한 사람이 일터에 총들고 들어와 보스를 쏴죽이고 자살했다.

약한 것 괴롭히기. 어쩌면 이게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의 강함은 본능을 억누르는데서 왔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본능을 제어하는 수많은 규범이 생겼고, 호모 사피엔스는 온 지구를 정복했다. 얼마나 성숙한 문명인가를 보는 방법인 여러가지가 있겠지. 본능을 어떻게 억제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동네가 더 문명화된 곳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을거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안전한 한국이 야만적이고, 총이 돌아다니는 미국이 더 문명화된 사회다.

나도 한국에서 저런 꼴 당했다. 그 중엔 제법 소문 비슷하게 퍼져나간 것도 있었다. 내 귀에 돌아왔을 땐 ‘피해자 탓하기’ 버전으로 바뀌어져 있더라. 뭐 한 10년 쯤 지나서 내가 멋진놈이 된 버전도 들려오긴 했다. 당시의 내 미래에 대한 Plan A도 미국에 오는 것이어서 이러나 저러나 한국을 떠나기는 했겠다. 미국에 사니까 참 좋다. 저런 꼴 당하지 않아서 좋고, 볼 일도 없어서 좋다. 세상에 그런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잊고 산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가끔 생각날 땐 안타까운 느낌이다. 익숙한 얼굴들도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야만에 꿈을 꺾어야 했을까. 이러니 세계의 인재들이 알아서 미국으로 모여드는 것 아니겠나. 거기에 나같이 애매한 놈도 껴서 오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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