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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미국의 물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미국 물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물가 수준이 어떤가를 물어본다는 건 막연한 질문이다. 사람마다 관심이 다르고, 돈 쓰는 곳도 다르다. 자기가 쓰고 싶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 수준이 그 사람이 느끼는 물가니까 내나 내 친구나 다들 다르게 느낄 것이다. 심지어 나와 아내도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사람마다 달라요."라고 대답하는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는가. 내가 지인들에게 했던 대답을 간추렸다.

1. 무엇이 싸고 비싼가?
딱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사람 쓰는 건 훨씬 비싸고, 사람 안들어가는 건 싸다.
- 한국에서 싸구려였던 것은 여기서 조금 더 비싸지만, 한국에서 비싼 물건들은 여기선 싸다.

미국은 사람 값이 비싸다. 그래서 무슨 서비스 받으면 비싸다. 대표적으로는 배관공, 이사, 이발, 외식, 여기다 의사 만나는 것까지 포함할 수 있겠다. 이래서 미국에서 Home Depot가 잘 되는 것 같다. 집수리 하는데 사람 쓰면 워낙 비싸니까 직접 재료사서 하는거지. 내 친구들도 보면 집에 드릴이 하나씩 있더라. 한국에 사는 친구들 중에는 아무도 안갖고 있지 싶은데 말이다.

미국은 재화의 천국이라고 하지. 물건 값은 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처럼 아예 싸구려는 또 없더라. 아마도 환불 정책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물건을 파는데 비용이 높으니 어느 정도 이하로 싸게 내려갈 수 없는 것 같다. 싸구려 저질 물건 팔고 나몰라라 할 수 없는게 여긴 환불을 아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싸구려 물건으로만 살 것 아니면 물건 값은 대충 다 한국보다 싸다.

2. 어떤 품목의 물가 차이가 가장 피부에 와 닿았나?
식료품비, 집세, 병원비다.

미국은 제 1의 농업국가다. 집에서 밥을 해먹으면 많은 돈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집세는 더 비싸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동네처럼 비싸지는 않지만 서울보다 높게 잡아야 한다. 시카고의 부동산 가격은 이동네 사람들의 소득에 비하면 좀 싸 보인다. 서울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데는 이유가 있다. 재산세가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그 없다시피한 재산세와 비교할 수 없다. 이러니 집세도 낮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은 어떤 동네라도 대충 다 안전해서 불편한것만 감수하면 싼 집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시카고에서는, 아니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한국 사람이 싼 동네를 찾아다닐 수가 없다. 여기서 싼 동네는 불편함이 아니라 위험함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인도 아닌 한국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보니, 뭐 동네를 잘 모르기도 하고, 싼 동네에 덜컥 살 수가 없는거다. 그러니 뭐 비싼 동네에서 비싼 집세 내고 사는거지. 이동네는 백년 넘은 건물이 수두룩하니 맘 모질게 먹으면 비싼 동네에서도 싼 집 찾을 수는 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거다.

그리고 병원비는 뭐… 미국 의료 시스템 엉망인거 다 알지 않나. 나도 유학생이던 시절에는 아예 병원에 안갔다. 지금에야 뭐 돈이래도 조금 버니까 아쉬운 일 있으면 가긴 하는데, 병원비 생각하면 한숨 나온다.

3. 생활 수준에 따른 물가 차이는 어떤가?
안전한 동네의 멀쩡한 집에 살면서 밥만 해먹는 생활을 bottom line으로 보자. 이 bottom line의 물가는 한국보다 조금 싼 것 같다. 허나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물가 수준이 빠르게 상승한다. 바로 사람을 쓰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외식도 자주하게 되고, 헬스장도 등록해서 가겠지. PT도 받고, 테니스도 배운다면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애 아프면 병원도 가야하고.

미국이란 동네는 참 다양하다. 생활비 $1,000만 있어도 거기 맞춰 살 방법이 있고, 그 열배 스무배를 써도 사치하는 느낌이 안들 수 있다. 한국에서 살 때는, 살다보면 막연히 쓰게 되는 돈이 좀 일정했던 것 같은데. 좀 빡세게 아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아끼는 것보다 더 적은 돈으로 생활할 수 있고, 그냥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하다보면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돈이 써지는 게 미국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생활 수준을 한국에서 유지한다면 아마 돈이 훨씬 적게 들 것 같다. 주된 이유는 외식, 의료비, 그리고 재산세일거다. 허나 불평할 수는 없다. 지출을 수입과 떼놓고 생각할 수가 있나. 물가가 비싸긴 하지만,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금의 여유는 누리기 힘들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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