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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미국 결혼식

와우! 미국 결혼식은 참 재밌구나. 한국의 결혼식이 행사라면, 미국 결혼식은 파티다. 다른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네. 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내 느낌과 절차를 좀 적어둬야겠다.

사귄지 4년 된 이 친구 커플이 결혼을 할지 안할지는 미지수였다. 어느날 둘이 놀러간 휴가지에서 남자가 약혼반지를 꺼내들었다. 사실 나도 좀 놀랐다. 짜식 결혼 안해도 상관없다고 하더니. 이 아름답고, 유쾌하고, 또 유능하기까지 한 아가씨와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은게 당연하긴 하지. 요새 한국도 좀 그렇지만, 미국 남자들이 결혼을 좀 기피한다. 반면 여자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한단다. 아무리 거추장스러운 제도라도 평생의 동반자로 삼고 싶은 여자를 잡으려면 해야겠지.

그렇게 둘이 결혼을 하기로 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러 갔다. 이건 그냥 예의상 하는 절차다. 진작 서로의 가족 모임에 참석을 하는 사이였으니 뭐가 잘못되기는 어렵겠지. 여기까지 끝내놓고 둘이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식장, DJ, 사진사도 알아보고 말이지. 남자가 살고 있는 콘도에서 살자는 얘기가 나와서, 여자의 취향에 맞게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잠시, 눈물 좀 닦자.

참 준비할 게 많더만. 그 대서사시를 내가 다 따라다닐 수는 없고, 한참을 지지고 볶은 후에 초대장이 날아왔다. 초대장에는 wedding registry라는 게 딸려 왔다. 그 커플이 선물로 받고 싶은 것들 목록이다. 신부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어 있는 목록을 보니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불쌍한 녀석. 네 인생은 이제 끝났어.

그 다음 이벤트는 bachelor party되시겠다. 영화에서 보면 스트리퍼와 마약은 기본이던데, 안타깝게도 우린 너무 건전했다. 2박 3일 동안 술로 유명한 동네로 여행을 갔다. 낮엔 양조장 투어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밤에는 동네 바에 가서 술을 또 마셨다. 결혼하고 나면 맘대로 못노니까 마지막으로 크게 놀아보자는 것이지 꼭 안하던 짓을 해가면서 사고를 칠 것까지야. 그냥 놀고싶은 대로 노는게 핵심이다. 이 핑계로 유부남 친구들까지 집에서 나올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아니한가.

Day-1, 리허설이 있더라. 신부 신랑 들러리들은 당연히 왔고, 가족들도 많이 왔다. 난 안가도 되지만 구경하러 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이 다 왔다. 한국의 결혼은 돈만 많이 들지 시간을 쓸 일은 드물었는데, 여기는 결혼할 커플의 친구, 가족들까지도 많은 시간을 쓴다. 뭔가 덜 세속적인 느낌이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전통 있는 성당에서 식이 열렸다. 식 자체는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데, 들러리하고 가족만 찍더라고. 나도 혹시 사진을 찍을까 싶어서 남아있어봤는데 친구 차례는 없었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뭘 했느냐 하면, 술마시러 갔다. 피로연장이 따로 잡혀 있는데, 그새 술을 한잔 하고 피로연장엘 가더라고. 얘네들 진짜 놀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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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찾은 사진인데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

피로연장에 와보니 뭔가 북적북적하더군. 본식에서 못봤던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오호라 이동네는 본 식보다 피로연이 더 중요한가보다. 뭔가 염불보다 잿밥스러운 상황이라 이해는 잘 안됐지만 뭐 두고보자. 와인 한잔 받아서 놀다가 자리에 앉았다. 곧 신랑 신부가 등장해서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는 신랑 신부도 같이 밥을 먹는다. 나는 결혼식날 쫄쫄 굶다가 다 끝나고 나서야 김치볶음밥 먹었는데, 이쪽이 훨씬 자연스럽고 좋다. 건배도 하고, 친구들이 신랑 신부 소개도 재밌게 해주더라. 우리도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었지.


​대충 이거랑 비슷한 데서 밥먹었다.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집에 가야하나… 근데 왜 다른 사람들은 앉아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다음 순서가 있더라. 바로 댄스 파티. 이동네에서는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몸을 흔들어야 제대로 된 파티로 쳐주나보다. 처음은 신부와 ​아버지의 순서였다. 따뜻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였다. 다음은 신랑과 어머니. 이 뒤로는 뭐겠냐.. 그냥 플로워에 다 쏟아져 들어가는거지. 5살도 안된 꼬마들도 다 들어가서 즐겁게 놀더라. 미국 애들이 댄스파티에서 왜 그렇게 잘 노나 했는데 어릴 때부터 이러고 노는구나.


진짜 분위기가 이랬다. 구글에서 찾은 사진

우두커니 서 있으면 뭐하겠냐. Off the wall! 하고 외친 건 아니지만, 나도 뛰어 들어갔다. 한국에서 날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일이지. 역시 술의 힘은 위대해. 기억하겠다. Evan Williams. 어디서 춤을 배웠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흠뻑 땀을 흘리던 중에 밤 12시가 넘었고, 파티는 끝났다.

그 시간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좀 놀랐다. 아무리 적게 봐줘도 반은 되더라. 별 일 있는 사람만 중간에 가고 아니면 남아서 노나보다. 파티가 파한 뒤에는, 나처럼 가까운 곳에 사는 몇명을 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처 호텔로 간 것 같았다. 술은 마실만큼 마셨고, 놀기도 많이 놀았으니 이제 회복을 해야지.

여기까지가 나의 observation이고, 내가 느낀 차이점을 좀 써보련다.

먼저 초대하는 사람 수가 적다. 큰 결혼식이라도 200명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에 참석한 결혼식은 120명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을 초대하느냐면, 한국에서 청첩장 줄 사람과 집에서 파티할 때 부르는 사람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파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내가 저 사람을 지난 5년간 본 적은 없지만 혹시 초대 안했다가 험한 소리 들을 수도 있으니 불러야겠다’ 이런거 없다.

초대 받는 사람도 돈을 많이 쓴다. 앞서 언급한 wedding registry를 사주는데 한국의 축의금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 각자 형편껏 하는거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식 끝나고 놀아야 하니 호텔도 잡아야 된다. 이래서 가까운 사람만 초대하는 것 같다. 물론, 결혼식 자체가 다르긴 하다. 한국에서야 밥만 먹고 오지만 여기서는 하루저녁을 책임지는 파티 아닌가. 들어보니까 일본도 그런 모양이더라.

일하는 친척들도 같이 밥먹고 술마시고 논다. 한국에서 가봤던 사촌형님들 결혼식을 떠올려보면, 뭐 생각나는게 없다. 난 접수대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식 다 끝나고야 주섬주섬 밥먹으러 갔다. 그러면 뭐 음식도 남아있는게 별로 없었다. 사진도 못찍고. 내 결혼식 때 일한 사촌형님들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여긴 축의금 이런거 안받는다. 주차권 나눠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친척들이 다 같이 놀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재밌다는거다. 결혼식의 형식이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 이정도로 재밌다고 한다. 한국에서처럼 각잡고 앉아있다가 밥먹고 오는게 아니다. 하기사 결혼이라는 좋은 일이 때문에 모였는데 즐거워야지. 이런게 진짜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 결혼식도 기대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더 재밌게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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