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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보통 한국 사람들을 위한 보험 가이드

먼저 밝힐 것이 있다. 내가 금융을 공부하긴 했지만, 보험에 대해서 지식이 특별히 많지는 않다. 보험료 관련된 유틸리티 커브 쬐끔 들여다봤는데 뭐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난다. 보험사 다니는 친구들한테 좀 줏어들은거 좀 있고 말이지. 이런 내가 남들에게 보험을 어떻게 해라 하는게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 허나 나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여기엔 세가지 이유가 있다.

1. 개인의 자산 포트폴리오라는 숲을 볼 때, 시중에 나와 있는 보험의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알 필요는 없다.
2. 내가 갖고 있는 자산 관리에 대한 지식이 보통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것보다 월등하다. 영업점에서 고객 상담하시는 분들, 나름대로의 전문성은 갖추고 계시겠지만, 정작 금융에 대해서는 좀 많이 모르신다.
3. 한국 사람들의 보험 포트폴리오가 정석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 있다. 그래서 세세한 것 따지고 할게 없기도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법적으로 반드시 들어야 하는 보험을 제외하고는 들지 말것. 단, 현 자산에 비해 수입이 높은 사람에 한해 생명보험은 추천한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한다.

보험은 ‘사단이 나는 걸 막는 수단’이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2억원을 물어주게 생겼다고 해보자. 당장 그 많은 돈을 현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집이라도 팔던지 전세금을 빼서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이는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일이고 이를 전문용어로 ‘사단이 났다’라고 한다. 물론 저런 일을 겪는 사람은 드물지만, 생기면 아주 좆된다. 이를 대비하는 방법이 보험이다. 확률이 대충 0.001%라고 치면 기대값은 2만원이다. 여기에 프리미엄을 얹어서 6만원쯤 주고 금전적으로 버거운 위험을 보험사에게 대신 맡아달라고 하는거다.

여기서 핵심은 ‘금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라는 것과 그 대가로 기대값에 ‘프리미엄’을 얹어서 준다는 것이다. 대충 보험료가 기대값의 세배 쯤 되는 것처럼 써놨는데, 실제로 세배가 안된다면 난 좀 놀랄 것 같다. 이걸 잘 기억하고 다음 예를 보자.

집에서 벽에 못 박다가 손가락이 부러졌다. 치료비는 10만원이다. 실제로는 저것보다 안들겠지만 대충 그렇다 치자. 이게 사단이 난거라고 할 수 있나? 물론 아프기야 오지게 아프겠지만 금전적으로 큰 부담은 아니다. 저런 일이 생길 확률이 0.1%라고 치면 기대값은 100원이고 보험료는 적어도 300원은 될거다. 300원 뭐 별것 아닌 돈이다. 300원 내면 10만원 준단다 하고 좋아하는 저능아는 되지말자. 근본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왜 돈을 더 줘가며 보험사한테 미루냐 이거지. 차라리 300원으로 저금을 해라.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보험사에게 갈 필요가 없다’ 이걸 잘 기억해야 한다. 가입하려는 보험에 치질 수술비 보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되시는가? 치질수술비 40만원 좀 안한다는데 그 돈 때문에 사단이 나는지 안나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입원비 특약 이런 것도 있다. 입원하면 하루에 몇만원 준단다. 요새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입원 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차지하고라도 저 돈 없어서 뭐 인생이 어찌되지는 않을거다. 그럼 그거 필요 없다. 보험사에서야 저런 잡다구리한 걸 포함시키고 싶어하겠지. 저런거 많이 하면 할수록 이익이 많이 남을텐데 왜 안그러겠나.

앞서 말한 기준에 맞춰 보험에서 자질구래한 것들 다 빼고, 무슨 전환 옵션이네 이런거 다 빼고 뭐가 남는지를 봐라. 별로 남는 것 없을거다. 그럼 그 보험은 필요없는거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보험이 걸러진다.

그럼 저축성 보험은 어떤가? 저축성 보험이 필요하면, 그냥 저축을 해라. 사업비네 뭐네 빼먹고 남은 돈으로 저축을 한다는데 뭐. 그냥 니가 하는게 낫다. 대부분의 저축성 보험이, 솔직히 다인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으니, 금리와 연동되게 되어 있다. 2000년대 초보다 지금이 금리가 낮다. 보험사가 미쳤다고 가입할 때 보여준 금액을 주겠나. 그냥 저축해라. 여기까지 하면 갖고 있을 보험이 드물거다.

가끔 보험료보다 많이 돌려받기가 쉬운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하는 점은 time value of money와 확률이다. 20년 전의 만원과 지금의 만원은 같지 않다. 금융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간과하기 쉬운 개념인데 이걸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20년 후에 원금 준다면 그건 원금을 주는게 아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도 보험사가 절대 손해보지 않도록 해놓는다. 모르긴 몰라도 99%의 사람들은 보험사에 낸 돈만큼 돌려받지 못할거다. 보험을 무슨 카지도 게임처럼 광고하고 파는 놈들 봤는데 어휴… 이게 잘못된 어프로치이기도 하지만 억지로 그렇게 봐줘도 99% 지는 게임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보험사가 많은 돈을 돌려준다는 것은 일단 말이 되지 않는다. 얘네들이 뭐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돈이 나오겠나. 사람들이 보험료 내면 거기서 설계사들 수당 떼주고, 직원들 월급 주고 월세 내고 회식하고 등등 해서 남은 돈 갖고 운용을 한다. 그런 큰 기관투자자들만이 접근 가능한 무슨 대박 투자기회가 어디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봤는데, 뭐 그런게 있다손 쳐도 보험회사는 아니다. 얘네들은 운용해서 손실이 나는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아주 안전한, 동시에 기대 수익도 작은, 채권 같은데만 투자하거든. 이것저것 다 떼고 남은 돈 얼마 수익도 안나는 채권에다 넣어놨는데 무슨 수로 보험료보다 더 돌려주겠냐.

가끔 유지해야 되는 보험도 있긴 있다. 대표적으로는 IMF 시절 전에 들어놓은 연금 보험 중에 그런게 있다. 내 기억으로는 IMF 전에는 정기예금 금리가 1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런 고금리가 계속될 줄 알고 대충 설계해서 판 게 좀 있다. 요새야 뭐 계리사 써서 물샐틈 없이 설계를 하기 때문에 이런 행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옛날에 든 보험이라고 다 이런 것도 아니다. 옛날에는 좀 많고, 요즘은 좀 드물다는 얘기지. 그런데 내가 이런 걸 갖고 있는 행운아라면 이미 알고 있을거다. 왜냐하면 보험사에서 존나 전화왔을거거든. 해지시키려고 말이야. 이런거 다 알았으면 보험사에서 야부리 터는거 다 씹고 유지하고 있을거 아니냐.

여기까지 읽었으면,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험 중에 유지를 해야 하는게 드물다 싶을거다. 특히 한국 보험사들 상품은 뭔 잡다구리를 현란하게 집어넣고 파는 하이브리드형 상품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을 놓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과연 금융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보험을 드느냐? 무슨 대단한 보험이길래 저런걸 다 빠져나가냐? 여기에 대한 답을 간단히 준비했다.

일단 미국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보험 많이 안든다. 한국 사람들처럼 보험 많이 든 사람 못봤다. 미국 사람들은 법적으로 들어야 하는 보험이 있다. 일단 의료보험을 들어야 하고, 차 있으면 자동차 보험, 집 있으면 집 보험이 필요하다. 그 외에는 보험을 잘 안드는데, 유일하게 필요가 있다고 하는 보험이 하나 있다. 바로 생명보험이다. 뭔 잡다구리한게 주렁주렁 달린 생명보험 말고 아주 간단한거다. 그냥 언제 죽으면 정해진 금액이 나오는 보험이다.

어떤 사람의 순자산이 얼마인지를 본다면 현재 갖고 있는 재산에서 부채를 뺀 것을 본다. 허나 중요한 게 하나 빠져 있는데, 그 사람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human capital’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미래 예상 수입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금액이다. 은퇴하기 직전인 사람이라면 이게 0이겠지만, 이제 갓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로펌에 들어간 사람은 ‘human capital’이 높을거다. 이 새내기 변호사의 순자산은 아마도 학자금 대출 때문에 마이너스겠지만, human capital을 포함하면 upper class로 볼 여지가 있는거지.

예를 들어 human capital이 30억원이고, 그 외 자산은 2억짜리 전세금 뿐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분이 따박따박 돈을 벌어오면 그 돈으로 가정이 굴러가겠지. 그런데 불의의 사고가 나서 돌아가신다면 그 가정에는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그런데 여기 30억원짜리 생명보험이 있었다면, 금전적으로는 사단이 나는 위험을 피해갈 수 있다. 물론, 정서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큰 손실이겠지만 말이다.

현재 순자산에 비해 human capital이 큰 사람에 한해서, 이 생명보험이 개인의 재무 포트폴리오에서 효용이 있는 유일한 보험이다. 이러니 내가 ‘한국형’ 보험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지. 미국의 어떤 재무전문가를 만나도 한국에서 설계사분들이 파는 그런 상품을 아는 사람은 없을거다. 얘네들이 무식해서 그런게 아니다. 알 필요가 없는거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한국 보험에 대해서 아느냐. 뭐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병특 끝내고 멀쩡한 곳에 취직을 했을 때다. 어느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거실에 어머니와, 어머니와 같은 교회 나가시는 설계사분이 앉아계셨다. 나를 위해서 좋은 것을 마련해주셨단다. 나는 설마 어머니께서 내게 안좋은 걸 권하시겠나 싶었고, 어머니 친구분도 내가 자식같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나한테 똥 뒤집어씌운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왜 그리 생각했나 모르겠다.

문서 한장 한장 간단히 설명해가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주마간산이 따로 없었고, 그 분위기에서 안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질문 하나 할래도 눈치를 살폈다. 예의 바른 나는 두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행동했다. 그날 내가 사인한 보험은 삼성생명의 25년짜리 종신보험이었다. 보험이 쓰레기인 것도 문제고, 아 씨발 유학 계획 하고 있는데 25년짜리 계약이라니. 그때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말을 못했다.

누구 하나 취직했다고 하면 썩은 고기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마냥 달려들어서 비싼 보험을 뒤집어씌우는 지인영업. 바로 거기 내가 당한거였다. 이런게 바로 교회 나가는 맛 아니겠나. 그 설계사 분은 몇년 안돼서 지인 다 털어먹고 그만두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분이 진작 구워삶았고, 나는 보험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다. 뭐 그러니 내가 타겟이 된거겠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한테 가끔 보험도 들어주고 해야 교회 커뮤니티에 영양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는 모양이더라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결혼할 때야 그 보험을 들춰보게 됐다. 보험사에 전화해서, 가입 전에 물어봤었어야 했을 질문들을 했다. 뭐 경악스럽더라. 설계사가 사실을 오도하며 가입을 유도했으므로 환불을 요구했는데, 뭐 그 시절에 그런 식으로 영업이 된 건 알고 있지만, 문서에 내가 다 사인을 했으므로 어쩔 수 없단다. 그 보험이 좋은거라며 해지하지 말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하나 따지니까 좋다는 소리는 쑥 들어가고, 날 속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하더라. 허나 돈을 돌려받기는 불가능했다. 혹여 내가 제대로 판을 벌여서 돈을 돌려받더라도, 그 아주머니, 경제적으로 좀 어려우신 듯 한데, 설계사가 돈을 물어내야 된단다. 이는 어머니와의 마찰까지도 감수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냥 해지하면 많은 돈을 손해보지만 더 큰 손실을 막아야 했다.

그 후로 주변 사람들의 보험을 살펴볼 기회가 좀 있었다. 내가 금융 전공이니까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더라고. 씨발 뭐 다 나처럼 당했더라. 그 친구들이 다 해지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뭐 또 보험사에서 좋은거니까 깨지 마세요 했겠지. 그렇게 가입자에게 유리했으면 지들이 먼저 전화해서 깨자 했을거면서. 게다가 지인영업이란 게 참 좆같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거절할 자신이 없다. 돈 몇백이 눈 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을 그 설계사가 쉽게 물러날 리도 없고, 어머니까지 설득해야 한다. 그게 누군들 쉬울까?

이상이 내가 지인들에게 해줬던 얘기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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