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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아빠의 인생

결혼을 하고부터 취미생활이 어려워지더니, 아이가 생기니깐 아예 꿈나라 얘기가 돼버렸다. 가끔 이전 생활이 그립다. 유학 시절에는 기타를 치면서 소소한 재미를 찾았는데. 그 기타는 아내가 중고로 팔아치웠다. 나는 팔고 업그레이드를 하는줄 알았는데 아내 생각은 좀 다르더라고.

나도 스트레스도 좀 풀고 싶고, 기타를 치면 애기 정서에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뭘 살지 알아봤다. 문득 싸구려 통기타에 METALLICA 스티커를 붙여놓고 애지중지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갓 백일이 지난 애기의 아빠이기도 하니까 안부도 궁금해서 연락해봤다.
"요새도 기타 좀 치냐?"
곧 답이 왔다.
"놀리는거냐?"

그래 뭐 너도 별 수 없구나. 아빠는 그런 존재인가보다. 나도 애기가 생기면서 줄인게 많지. Netflix도 끊었고, gym membership도 cancel했고, 친구 모임도 매번 불참했더니 이제 오라고도 안한다. Netflix는 하도 안봤더니 이미 계정이 탈취당해서 무슨 내 이름이 Spanish로 바뀌어 있더라. Gym에 다니는 대신 조깅이라도 할랬는데, 그럴 시간도 없다.

아내도 이런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비록 기타를 사겠다는 아이디어에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타협안을 제시했다. 애기가 커서 피아노라도 배우게 되면 그 때 같이 레슨 받으란다. 참…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그날이 오면 미시건호가 뒤집혀 용솟음이라도 칠런지… 애가 kindergarden에 가면 그럴 수 있다 치고 그때 까지의 날짜를 계산해봤다. 대충 1500일 근처로 남았네. 이런 짓은 내가 병특 할 때 소집해제 날짜 계산하고 산 이래로 처음이다.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라도 붙들고 있는 내게 아내가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둘째를 임신했단다. 아아… 기쁘다. 나도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는구나. 내 아이가 외롭지 않겠구나. 친구 애들이 지들끼리 노는게 부러웠는데 우리 애도 그러겠구나. 왠지 세식구로 family 의료보험을 들 때는 손해보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네식구 되는거니까 그런 기분 좀 덜 들겠구나. 기쁘다. 이 많은 property tax를 내고 애 하나만 학교 보내면 손해보는 기분일텐데, 나도 이제 둘 보내게 되겠구나. 기쁘다.

친구들은 축하해준다. 그러면서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단다. 그래 뭐 진작 끝나 있었지. 이번엔 확인사살 들어온거고. 내 개인의 삶은 끝났지만 난 아빠로써의 새삶을 산다고 칠란다. 그동안 두고 있던 미련은 깨끗하게 잊어야지. 기타 좀 안치면 어떤가. 피아노 레슨 좀 일찍 받는다고 내가 키신형님처럼 될 것도 아니고. 그래그래 울지 말고 미련을 버리자.

내 인생에서 확실한 한가지가 있다. 난 내 아이보다 누굴 좋아해본 적이 없다. 아빠의 아픈 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게 귀여운게 하나 더 생긴다고?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물론 몸이야 오지게 피곤하겠지. 허나 둘째가 생기면 행복할 일도 그만큼 많을거라 생각하니 내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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