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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

친한 학교 친구 하나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날 같이 저녁을 먹다가 "너는 퇴근 후랑 주말에 뭐하니?" 이렇게 물어보더라. 친한 친구고 나에 대해서도 잘 안다. 한국인 친구가 없다시피하다는 것까지도. 그래서 얘는 그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거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그냥 집에서 쉬거나 동네 공원 산책해." 이렇게 말했으니까. 일그러지는 그애의 표정을 보며 한마디 더 보탰다. "어떻게 이렇게 살까 싶지? 그런데 나름대로 할만해."


한국에 있을 때는 일단 일이 늦게 끝났다. 그렇게 늦게 일 끝나고 동료들과 술한잔 하러 갈 때도 많았고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 있으면 친구도 없고. 일도 일찍 끝난다. 동료들과 가끔 치킨윙을 먹으러 갈 때도 있는데 그래봐야 한달에 한두번이다. 꼭 시간이 남아서만은 아니다. 사람이란 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보니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면 난 어떻게 했나 생각해보니 나름 통하는 방법이 있었긴 했다.


1. 바쁘게 드라이브 걸기.

사람이 정말 뭔가에 몰두하면, 외로울 시간이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럴수록 나에게 더 가혹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를테면 영어연습, 특정 미드 특정 화의 대화를 모두 입에 붙게 연습하기를 데드라인을 딱 정해놓고 하는거다. 그렇게 하면 일단 그동안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해놓은 것을 보면 뿌듯하다. 그런데 큰 단점이 있다. 사람이 어떻게 맨날 이러고 사냐. 그러면 피곤해서 살 수가 없다.


2. 취미생활

아는 유학생 하나는 인생 꿀꿀할 때마다 호숫가로 가서 자전거를 탔다. 지금은 교수 됐는데도 여전히 자전거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풀더라. 이렇게 취미생활을 하나 정해두고 몰두하는 것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악기를 조금 다룰 줄 알아서 여기 오자마자 악기를 샀다. 처음에는 건반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유학생 처지에 큰 돈 나가는게 겁이 나기도 했고 이사다닐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났다. 사람이 참 희안한게 내가 한국에서 쓰던 것과 같은 것을 사려고 했는데도, 오히려 가격은 더 싼데도 겁이 나더라. 그래서 대신 기타를 중고로 하나 샀다. 도움이 많이 됐다. 담배피는 사람들은 기분 허전하면 자기도 모르게 담배로 손이 간다는데, 나는 기타로 손이 가더라.


3. 친구 불러서 놀기

외로움 느낄 때마다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와 놀 수 있다면 그건 외로움에 고통받는 게 아니다. 그런데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불러낼 친구가 마땅찮다. 그래도 클래스 내에서 평판을 잘 쌓아놓으면 파티 같은데 많이 불러주더라. 물론 처음엔 가봐야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에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거였지만, 이게 한두번 계속 쌓이다보면 그 중에 친해지는 사람도 나온다. 꼭 파티가 아니라 학교나, 회사에서 열심히 생활하다보면 절친까진 모르겠지만, 괜찮은 사람이란 평판을 얻게 되면서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도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점이 문제지만 그런 식으로 만든 친구들이 외로움 극복에 참 많이 도움이 된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언제든 불러낼 친구가 있다 사실이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사실 지금도 유학생 시절과 외로움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었다는 아주 큰 차이가 있지만 생활패턴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난 외로워서 힘겹거나 하지 않다. 유학생 시절엔 책, 운동에 몰두하기도 하고 단 걸 먹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얘길 듣고 브라우니를 찾아서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브라우니 먹은지 몇달은 된 것 같다.


아무래도 그 차이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 유학생 시절엔 정말 말도 못할 열패감과 자괴감에 고통받았다. 그런 처지여서 외로움을 더 심하게 느낀 것 같다. 그런데 클래스에서 조금씩 아웃퍼폼하고 주변에서, 비록 영어는 잘 못하지만, 좋은 사람 대접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도 내 자신에 대해서 좋게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외로움을 극복해나간 것이고. 문제는 갑자기 비참한 환경으로 떨어진 상황에 내 자신에 대해서 좋게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거기서 도피하는 것을 선택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회피하는 것이지.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뭐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위에서 내가 열거한 방법들은 다들 조금씩 도피와 내 자신을 좋게 느끼는 것이 섞여 있다. 그때는 그런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난 이젠 알고 있으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시행착오 없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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