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주염과 함께한 발렌타인 데이
목요일 밤부터 이빨이 조금 욱신거리긴 했다. 이게 좀 나아지다가 다시 아파오더니 금요일 밤이 되니 아파서 잠을 못잘 정도가 됐다. 누가 칼로 잇몸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난 이게 사랑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손으로 눌러보니 어금니 근처가 확실했고, 실제로 거기 매복해 있는 사랑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주 전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가 내게 썩은니가 없다고 말해줬었다. 사실 사랑니도 문제가 안될거라고 했는데 왜 이런지 의아해 하면서 고통을 덜어낼 방법을 열심히 찾아봤다. 뭐 근데 별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하며 밤을 새고 치과 문 열릴 시간까지 기다렸다. 이빨이 아프니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못먹으니 배고프고, 잠을 못잤으니 피곤하고, 또 아프긴 무쟈게 아팠다. 영화 세븐에 나오는 칠거지악도 아니고 이 세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오니까 진짜 이건 내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경험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치과 문 여는 시간이 되어서 1번 환자로 밀고 들어갔다. 내가 예약은 안했지만 지금 이리 아프니 제발 좀 봐달라고 읍소했다. 그리고 이게 사랑니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동네는 사랑니 뽑는건 일반 치과에서 안하기 때문에 oral surgeon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전화를 하더라. 그런데 이날이 또 토요일이다보니 문 연 곳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큰 병원 응급실에 가야 된다는데,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거기 가면 내 한달 월급이 날아갈 판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니 때문이라고 했고, 종합 검진은 불과 몇주 전에 받았기 때문에 거기 의사도 처음엔 정말 사랑니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의사 하나가 이리저리 내 이빨을 두드려보더니 이건 사랑니 문제가 아니고 이빨이 썩어서 그렇단다. 난 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해서 몇주 전에 검진받았을 땐 썩은게 없다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다.
몇년 전 한국에서 이빨을 떼운게 하나 있다. 그런데 이빨 속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채 레진을 씌운 모양이다. 그리고 이빨은 안에서 썩어들어가고 있었고 겉에서는 알 수가 없었던거지. 이제는 감염이 뿌리까지 되어서 신경치료가 필요한 지경까지 왔단다.
생각해보니 가끔 이쪽 이빨이 욱신거리긴 했다. 특히 뭘 어떻게 씹었을 때 그랬다. 지난번 한국 갔을 때 치과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도 다 했었는데 그때도 잡아내지 못했다. 아마 이런게 발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얼마 전에 아내가 치과에 갔을 때는 이런 걸 하나 발견해서 치료했었다. 뭐 난 좀 재수가 없었나보다.
뭐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원인은 찾았다. 당장 치료하고 싶었는데 감염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정확히 어딘지 집어내기 어려우니 항생제 며칠 먹고 감염을 가라앉히고 다시 오란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으니 그나마 고통이 좀 가라앉더라.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군. 이렇게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지나갔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