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비참했던 일도 하나

Markowitz 2015. 3. 18. 07:38

​내친 김에 정말 비참한 짓 했던 것도 풀어봐야겠다. 학생 때는, 심지어 대학생 때도, 돈이나 직업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았다. 난 그냥 낙관적이었다. 낙천적이고 순진하고, 열의 넘치는 학생이었다.

난 막연히 훌륭한 학자가 되고 싶었고 4학년 2학기가 되자 연구실을 선택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 했다. 특히 그 때 도와준 학과 선배들은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에 어떤 한 사람이 끼어들어서 내가 해야 될 결정을 다 해버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바꾸려고 했으면 몇몇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을거라 선뜻 뭘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깝다면 가까운 사람이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잘 이끌어 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날 가장 집요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날 몰아갔음을 아는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자기 이익 앞에 별 거 있는 사람 드물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파국에 이르렀고 내게 남은건 군대에 끌려갈 몸뚱아리 하나였다. 커리어가 망가진 것도, 안좋은 일을 당한 것도 모두 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비참했던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내 등을 쳐먹을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난 그의 심기를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얼마나 호구같아 보였을까. 이용을 당해먹을래도 뭐 좀 대단한 사람한테 당한 것도 아니고 그 수준 떨어지는 인간한테 당하다니. 개인적으로 큰 손실이거니와 쪽팔리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비참한 사건에서 배운 것도 있다. 첫번째는 위에 언급한 대로 “자기 이익 앞에 별거 있는 사람 드물다”는 사실이다. 만약 별거 있는게 있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이 기준은 후에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두번째는 내 일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도 진다. 참 단순한 진리다. 남이 대신 결정해준다고 책임도 그 사람이 져주는 것은 아니다. 누가 내 인생에 개입하려 한다면, 아마 자기 유리한대로 다 정해놓고 똥은 나 혼자 뒤집어쓰게 하고는 나몰라라 할 가능성이 크다. 내 상황이 딱 그랬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문제의 원흉인 인간이 자기 발로 내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바로 내 결혼식이었다. 난 어이를 상실했고, 그 사람은 능글능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구창을 날려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혼식이 참 재밌게 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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