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월드컵과 우리나라의 병력특례

Markowitz 2010. 6. 26. 01:17
2002년에 16강 진출하자마자 나라에서는 선수들의 병역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16강에 들어간 이번에도 그런 말이 나오나보다. 하긴 안나오는게 이상하지.

문제는 이건 것 같다. 한국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놈들이 너무 많다. 내 주변만 해도 그냥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온 애는 거의 없다. 나부터가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를 했었고, 몇 안되는 군대를 간 애들은 카투사 아니면 장교다. 박사특례도 있기 때문에 힘들게 박박 구른 애들은 거의 없다. 안친한 애들 중에는 좀 있고. 그래서 친구들이 모여서 군대 얘길 하면 다들 4주짜리 훈련소 얘기 밖에 할 게 없다. 아니면 예비군이나.

그런데 집안에 돈 좀 있고 권력 좀 있는 애들은 이것마저도 안한다. 그냥 다 면제다. 어떻게든 다 피한다. 지난 천암함 사태 때도 긴급회의한답시고 모인 사람들 면면을 보면 군대 갔다온 사람은 사실상 군인인 국방장관 하나고 나머지는 다 면제 혹은 기피자였다. 덧붙이자면, 공익이나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도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군기피 수단으로 이용한다. 굳이 싸이 케이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있던 업체에도 낙하산으로 와서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놈이 있었고 고관대작들 청문회에도 이런 케이스가 제법 나온다.

군대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고, 그나마 재주나 빽 있는 놈들은 요리조리 다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누가 군대 가는게 신성한 의무라고 말할 수 있겠나. 병역 의무는 돈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의 의무가 되어버린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군대를 가는 건 개인적으로 손실이다. 병역특례를 한 애들도 병역의무가 없었다면 벤쳐 기업에서 박봉으로, 유무형의 차별을 받으며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투사 갔다온 애들도 거기서 영어를 많이 배웠다고는 해도 의무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마당에 그냥 사병으로 가서 구르는 애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고관대작 분들은 자기 자식들 사람 만들기 싫어서 군대 빼는 것도 아니고 병역의무가 없는 미국놈들은 다 철없는 망나니여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지 않은가. 심지어 군인인 전두환이는 지네 아들 때문에 석사특례라는 웃기고 자빠진 제도를 만들기까지 했잖냐.

게다가 기회도 제한을 받는다. 20대에는 군대 때문에 뭘 하질 못한다. 대학 졸업할 때에도 군대 면제를 받은 애들은 마음껏 외국 대학원에 어플리케이션을 넣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역의무를 염두에 둔 선택을 해야하는데 이게 기회를 엄청 제한한다. 기회 뿐 아니라 몸도 고되고, 그동안에 머리는 굳고 등을 생각하면 군대를 갔다와서 얻는 거라고는 전역증 하나 말고는 없다. 옛날에는 공무원 되고 싶은 애들은 가산점이라도 있었지만 요샌 그것도 없지 않은가.

한국에서 군대는 누가 가나? 돈없고 빽없고 기회를 못만난 사람만 간다는 데 대해서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군대는 손실이다. 게다가 빠질 놈들은 어지간히 다 빠진다. 이상황에 내가 못빠지면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다. 이런 현실 아래에서는 백약이 무효일 것 같다.

차라리 병역특례고 뭐고 다 없애면 좀 덜 복잡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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