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의 본성
엊그제 다우지수가 2000 포인트나 떨어졌다. VIX 인덱스는 60을 넘겼다. 30 언저리만 돼도 마켓이 패닉에 빠진건데 60이라… 내가 VIX 인덱스라는 게 뭔지 알게 된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다. 단순히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이다. 참고로 89.53이 최고 기록이고 2008년 10월 24일, 그러니까 금융위기 때 도달한 수치다.
이 사태의 원인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공급가를 30%나 후려치면서 치킨게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빡돌게 했나? 뒷이야기를 찾아봤다. 가장 유력한 가설이 러시아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와 사우디가 감산을 합의해놓고, 충실하게 합의를 이행한 사우디와는 달리, 러시아는 몰래 석유를 더 생산해다 내다 팔았단다. 말하자면 러시아가 사우디 뒷통수를 때린거지. 이에 사우디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이게 실패하니 너 한번 좆돼봐라 하고 유가를 끌어내린거지.
이게 그냥 겁 한번 주는게 아닌 것이 5-6년 전에 미국발 저유가 사태로 러시아가 휘청된 적이 있다. 진짜 러시아 망할 뻔 했고, 고래 싸움이 새우등 터진다고 베네수엘라는 아예 망했다. 이번 사우디와 러시아의 싸움에 또 여러 새우들의 등이 터져나갈 것인데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켓이 패닉에 빠진거지. 당장 사우디보다 생산 단가가 높은 나라, 업체들 여럿 피보게 생겼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셰일 오일 산업 종사자들은 직업을 잃게 생겼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거기서 파생되는 피해도 막심할 것이다. 그러니까 증시가 크게 반응했지. 미국이 세계 1위의 산유국인데, 셰일 오일 산업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거기다 돈 빌려준 은행, 투자자도 문제고, 걔네들이 연관된 사업이 얼마나 많겠냐.
여기서 러시아를 비난하기는 쉽다. 애들도 아니고 합의도 안지키고 뭐하는 짓이냐고. 가만 있자. 애들이라고? 내가 어릴 때를 생각해봤다. 반대항 피구대회라도 하면 수작 부리는 꼴을 많이 봤다. 죽은 놈이 슬쩍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순서 아닌 놈이 오기도 하고. 대학 시절을 돌아봐도 비슷했다. 과대항 혹은 연구실 대항 축구대회가 있으면 용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말이지. 이게 다 이기려고 하는 짓이었다. 어른이 되면, 어른스럽게 행동하려면 이러한 속임수는 지양해야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어떠한가?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나이 60먹은 각국의 지도자들이나 다 비슷하다.
누군가는 그랬지. 관용은 호모 사피엔스의 미덕이 아니라고. 내 생각엔 미덕까지 갈 것도 없다. 이 투쟁심과 정복욕이 인간의 본질인 것 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이용해먹으려는 욕심 말이다. 하여튼 인간이란 참 재밌는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