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너무 어리둥절하다
지난 월요일엔 비가 왔다. 기차에는 평소와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타고 있었다. 이날이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마지막 날이어서 다른 날엔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평소와 다른 그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목요일 저녁에 회사로부터 이멜이 한통 왔다. 금요일날 회사를 나오지 않아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나오면 하루 휴가를 주겠다고 하더라. 그 때부터 모든게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난 회사에 나왔는데, 아주 많은게 달라졌음을 알았다.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오피스는 이상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추수감사절 주의 금요일도 이렇게 비어있진 않을거다. 오후엔 국가 비상사태 선포가 있었다. 개학이 연기된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난 우리 아이의 데이케어가 문을 닫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거기는 평소처럼 평온했다. 국가 비상사태? 증시가 요동치는 것 말고는 남일 같았다. 그런데 곧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데이케어가 2주간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럼 내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주말이 되어보니 조금 더 선명한 그림이 나왔다. 어지간한 박물관이 문을 다 닫았다. 마트의 매대에서 냉동식품이 자취를 감췄다. 식당도 문을 많이 닫은 것 같다. 직장에서는 2부제를 실시했고, 대중교통은 사용하지 말란다. 난 어차피 자전거 타고 다니니까 상관은 없는데, 자가용 주차장 비용을 회사에서 대줄만큼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난 목요일만 하더라도 모든게 평소 그대로였는데, 불과 며칠사이 온 나라 사람들이 자가 격리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부디 이게 효과가 있어서 데이케어라도 문을 다시 열었으면 좋겠다.
당장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첫째가 둘째를 너무 심하게 질투해서 한사람이 둘 다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 질투만 하고 넘어가면 모르겠는데, 목청이 터져라 울고, 소리를 지른다. 첫째 때문에 둘째는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못잔다. 아무리 둘째가 착하다고는 해도, 상황이 그지경이 이르면 같이 울고 온 집안이 혼돈의 카오스에 빠진다. 오늘은 회사를 나와봤는데, 아마도 나도 장기간 휴가를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처럼 어린 자녀를 둔 사람들은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회사에서도 충분히 우려할만하다.
자기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얘길 나눠봤다. 그 친구나 나처럼 어린 자녀를 둔 직원들이 전체 직원 중 반은 될거라고 한다. 아마 그들도 장기간 휴가를 쓰거나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울 걸로 예상하고 있더라. 회사는 계속 굴러가야 하는데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난 뭐…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더라. 그냥 주식 투자 관련해서 조언만 좀 해줬을 뿐이다.
이것은 분명 경기침체의 시작이다. 이전의 다른 경기침체와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금융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실물경기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만 해도 금융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실물경기로 번져나갔지. 그런데 이번엔 리테일 비즈니스가 가장 먼저, 대규모의 타격을 받을 것이다. 레스토랑, 짐, 공연장 등등.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 전통적인 모든 비즈니스가 멈췄다. 그런다고 은행이 대출 이자를 깎아줄 리는 없다. 물론 그런 비즈니스 중에 파산이 나오면 그제서야 금융권이 영향을 받겠지. 다시 말하면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난 아무일 없이 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거다.
엊그제 만난 친구도 공연장 관련 사업이 있는데, 이게 다 취소가 됐으니 관련 인력들을 해고해야 할거라고 말하더라. 이번 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을텐데, 이 바이러스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희망조차 없다.
좀 희망적인 얘길 하자면, 미국 정부가 발빠르게 행동했다는거다. 금융위기 당시 QE를 능가하는 규모로 돈을 푼단다. 실물경제라는게 실험실처럼 통제된 환경이 아니라 예전의 경험이 그대로 재현되리라고 믿을 수는 없지만, 이걸 무시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지난번에는 QE를 시작하자 몇달 후부터 증시가 회복됐다. 그런데, 금융위기 때는 일차적으로 타격 받은게 대규모 은행들이었으니 누구를 도와줘야할지, 무엇을 해서 돈이 그들에게 직접 흘러가게 할지 분명했다. 그냥 채권 사서 그 은행들 도와주는거지. 그런데 이번엔 베일아웃의 대상이 워낙 작은 수많은 경제주체일텐데 어떻게 설계해서 그들을 정교하게 타겟팅할지는 잘 모르겠다. 기사를 대충 읽어서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