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
대학 와서 알게 된 이 고등학교 선배는 정말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공부는 당연히 잘 했을 테고, 외모도 남자답게 잘 생겼고, 목소리도 좋다. 인품도 훌륭하다. 내가 그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형이 보여준 대처는 정말 본받을만 했다. 누구나 만나서 몇 마디 말만 해봐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 형도 나를 좋게 봐준 것 같다.
난 특별히 그 형이 잘 되길 바란 적은 없다. 당연히 잘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다 직장인이 되었고 가끔씩 얼굴도 보고 지내다가 난 미국으로 왔다. 그런지 얼마 안되어서 난 그 형이 다니는 회사의 사세가 기운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급기야 상장폐지까지 된 것이다. 회사가 그 모양이 되었는데 거기 구성원들이 잘 지내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 걱정도 좀 되고 어떻게 궁금도 한데 도무지 연락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더라. 나도 내 친구들이 많이 간 업계가 그야말로 줄초상이 나는 바람에 연락 못해보는 친구 여럿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 형이 어느 상장사의 임원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상장사도 아니고 아주 덩치도 큰데다가 경제 뉴스에 많이 오르내리는 회사다. 정말 너무 기뻤다. 정말 기쁜 마음에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형도 반가워 하시고 내가 얼마나 늙었는지 궁금하시댄다.
원래 다니던 회사는 사세가 줄고 있으니 승진 기회는 당연히 별로 없을 것이고, 그래서 다른 회사로 옮기셨단다. 회사가 어려워지는 와중에 메뉴얼을 만들어가며 일을 했다니 활약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면접관 쪽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는 그 형이 첫번째 면접자였는데, 한번 보고는 그냥 결정을 했단다. 원래 primary candidate부터 인터뷰를 보니까 이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 회사가 사람 정확히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한 것 같다. 그 쪽에서도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암 그랬겠지.
수년 전부터 아는 사람 누가 잘 되었다는 소식이 가끔씩 들려왔다.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고,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는 뭐... 소식 없이 조용히 지내는 28번째 지인 이런 상태로 있지만, 그런 지인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뭐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러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미칠 일? 미칠 일이야 많지. 난 평생 날 앞질러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했는데 이런 내가 맨정신으로 살기 쉽겠소?"
Breaking Bad에서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에게 이런 얘길 한다. 그걸 보면서 나도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아휴.. 그 때 하필이면 그 씹새끼가 나한테 그 지랄만 안했어도... 하면서 말이야.
뭐 내 처지야 그렇다 치고, 지인들 소식을 들으면서 기뻤던 적이 많은데, 이 정도로 기분이 좋았던 적도 드문 것 같다. 마침 그 회사가 부모님댁에서 멀지 않던데, 한국에 가면 찾아가기 편하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