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소중한 것이랄까
잠이 오지 않아 부모님댁 거실에 나와 있었다. TV 옆의 장식장, 그리고 그 안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단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젊을 때 아프리카 가서 사오신 무슨 장식품 같은 건 그래도 어느 옛날 사은품으로 받은 싸구려 장식품까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니. 허나 여러 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은 것들이니 부모님께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물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마도 그 대부분의 물건들은 그냥 버려졌으리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마 나도 그럴 거라 싶었다. 대단한 가치가 있어 보이진 않고, 무슨 의미가 있다 한들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아마도 대부분 버려질 물건들이 분명했다. 내가 여기서 미국까지 실어나를 물건이 뭐가 있겠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난 아마 꽤 많은 비용을 치루더라도 이 탁자를 간직하고자 할 것이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아마도 참나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시골 어른들 말씀이 그러하듯 정확하진 않을게다. 그런데 태풍이, 아마도 '셀마'였던 것 같은데, 불어서 그 나무가 쓰러졌다. 담벼락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그 큰 나무를 베어낼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나무를 동네 목수에게 맡겼고 그리하여 이 무거운 통나무 탁자가 우리에게 왔다.
이 탁자를 보면 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은 많지 않다. 허나 할아버지 할머니 아래에서 보호받고 행복했던 그 느낌이 내게 힘을 준다.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이런 기억들이고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야 말로 진정 소중한 물건, 의미가 있는 물건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잡스가 유언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본인에게 남은 것은 사랑했던 추억이라고 말이다. 그게 진짜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내가 나이가 들어서, 내 거실이 내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물건으로 가득하다면 어느 정도는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아내와 아이들, 그들의 삶에서 그러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