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농약과 함께하는 전원생활

Markowitz 2021. 10. 1. 06:39

서버브 집을 사면서 정원을 갖게 되었다. 정원의 대부분은 잔디밭이긴 하지. 집이 코너에 자리잡은 탓에 관리할 정원이 5,000 sqft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뭐 광활한 면적은 아니지만 집 크기에 비해서는 좀 넓은 것 같다. 이 정원을 보면서 아이들과 같이 꽃도 심고 나무도 가꾸고 상추, 깻잎도 심어보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면서 할머니가 정원을 열심히 관리하시는 걸 보면서 자랐다. 나도 이런 데 로망이 있긴 했다. 그런데, 이 로망을 이루는 데 이렇게 농약이 많이 필요한 지는 미처 몰랐었다.

주말에 한번씩 가서 잔디에 물도 주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잡초가 너무 많더라. 특히 민들레가 많았다. 민들레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뽑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칼 하나 들고 나가서 뿌리 쪽을 끊어내면서 하나하나 손으로 제거했다. 그리고 크로버 군락도 하나 있길래 손으로 다 뽑았다. 그런데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웃들 모두 잔디밭이 넓은데 풀 뽑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으니. 그리고 더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손으로 하다보니까 도저히 이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알아보니 민들레는 다년생 식물이라네. 내가 남겨둔 뿌리에서 또 자라날 거란다. 이 쯤에서 난 내가 엉뚱한 산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산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과감히 하산을 해야지. 친구에게 전화를 해봤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보니 답은 간단하더라. 약 친단다. 자기도 처음에 집 샀을 때 아내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하나하나 뽑았단다. 옆 집 아저씨가 그걸 몇 달을 지켜보더니 찾아와서는 약을 치라고 알려주더란다. 나는 겨우 며칠 이 짓 하다 말았으니 좋아해야 하나? 서버브 집들의 그 광활한 잔디밭이 다 농약으로 관리되는 것이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물 좀 잘 주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이구동성으로 약 쳐야 된단다.

결국 추천을 받은 약을 샀다. 약 겸 거름이더라. 이걸 뿌리는 수레도 샀다. 아내가 아마존 카트에 들어 있는 농기구들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더라. 하기사 나도 친구집 차고에 있는 농기구들을 보고 무슨 농부로 전업했냐고 한 적도 있으니까. 어휴 이건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필요한 농기구, 거름 잔디 씨도 한가득이다.

그제서야 어릴 때 집에 농약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농약은 있었어도 치는 걸 본 적은 없어서 그게 어디에 쓰이는 건 지도 몰랐다. 정원 가꾸는 데 필요했던 게로구나. 농약, 비료, 물도 주고 깍아도 줘야하고... 진짜 잔디밭이 이 많은 리소스를 잡아먹어도 되는 건가 싶다. 이래서 Planet Money에서 잔디밭의 가치에 대해서 다루기까지 했구나. 그냥 물만 줘도 잘 자라는 아름다운 잔디밭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상상일 뿐이었구나. 앞으로 놀랄 일이 더 많을 것 같아 은근히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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