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Blower 장착
시카고에서는 매년 10월이 끝나기 전에 첫 눈이 왔다. 올해는 아직도 눈이 오지 않았지만, 10월 말에 새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언제든 눈을 맞을 준비가 필요하다. 시카고 콘도에 살 때야 뭐 눈 치워야 하는 side walk이 있긴 했지만 길이도 얼마 안되니 삽 한자루만 있어도 충분했다. 이웃들도 있으니 내가 항상 치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여긴 그냥 나 혼자. 게다가 코너 유닛이라 커버해야 하는 side walk도 길다. 뭔가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Snow blower를 사야지. 이사 날짜 대충 정하고부터 snow blower를 뭘 사야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른 주에 사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눈 치우는 동영상을 보내주더라. 예상보다 기계가 꽤 커서 놀랐는데, 본인은 너무 큰 걸 샀다고 후회하고 있더라. 나보고는 조금 작은 걸 사래는데 그럼 뭘 사야 한단 말인가? 이건 아무래도 비슷한 동네에 비슷한 크기의 집에 사는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겠지.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옆집 아저씨.
안그래도 새로 이사왔으니 인사 한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와 옆 집 문을 두르렸고, 우리 이웃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이 아저씨는 놀랍게도 몇 년을 삽 한자루로 버텼다고 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기계를 샀는데, 바로 내 집의 전 주인 아저씨가 쓰던 것과 똑같은 걸 샀다네. 어디서 샀는지까지 알려줬는데, 마침 가보고 싶었던 동네의 하드웨어 스토어더라. 다음날 옆집 아저씨가 snow blower 사진을 보내왔고, 난 알려준 가게로 직행했다. 언제 눈이 올지 모르니까.
이 그리 크지 않은 하드웨어 스토어는 이 동네에 사는 가족이 몇 대를 걸쳐 운영하는 곳이다. 하여간 아주 평판이 좋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 계신 아주머니가 뭘 찾느냐고 말했고, 난 두말 없이 사진을 드리밀었다. 아주머니는 쿨하게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말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 Okay, I'll take it. 엔진 오일을 서비스로 넣어주며,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요는 가솔린을 미리 넣어두지 말 것. 가솔린도 보름이면 맛이 가고, 기계를 망가뜨릴 수 있으므로 눈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다. 이걸 믿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한 달 정도 차를 세워두는 일은 흔했는데 그렇다고 기름이 맛이 가서 차가 고장나는 일은 없었는데 말이지.
이러다가 갑자기 폭설이 내리면 drive way의 눈을 뚫고 기름을 사러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옆집 아저씨한테서 snow blower를 빌려서 drive way를 치우고 나가야 하는건가? 그럼 주유소에는 나처럼 snow blower에 넣을 기름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빌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오래 이 기계를 팔아온 딜러의 말이니 무시할 수는 없다. 자세한 건 메뉴얼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냥 진열대에 있던 놈을 바로 업어왔기 때문에 박스도 없고 메뉴얼도 없다. 나중에 어디서 다운받던가 해야지. 이도저도 안되면 나에게는 최후의 보루 옆집 아저씨가 있다.
생각보다 컸지만, 다행히 내 차 트렁크에는 들어갔다. 차고 한 켠에 내려놓으니 제법 뭐랄까 원래 여기 오래 있었던 물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 집주인도 비슷한 걸 갖고 있었다니 어쩌면 여기가 snow blower 자리였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참 팔자에 없던 물건들을 많이 샀다 싶다. 엊그제도 뭔 커다란 상자가 문 앞에 떨궈져 있어서 열어보니 사다리였다. 사다리만 벌써 두개째구나. 8ft 하나 4ft 하나. 사다리, 드릴, 농기구들을 제외해도 요즘 가장 많이 산 것은 또 전구고 말이지. 이런 식으로 서버브 라이프에 적응해가는 것 같다. 마지막은 총이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