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미국 단독주택에 대한 감상과 나의 다짐

Markowitz 2022. 1. 6. 05:29

한국은 대충 아파트가 주류 주거 형태인데, 미국에서 집이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는게 single family house라고 하는 단독주택이다. 나도 이런 곳으로 이사를 나와서 살고 있는데, 대충 느낀 바가 있어서 정리를 해봤다.

이 single family house의 구조는 어느 정도 정형화가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지하, 1층, 2층 이렇게 3개 층으로 되어 있고, 각 층마다 쓰임새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한국의 단독 주택도 비스무리한 구조를 갖고 있긴 하나 쓰임새를 이렇게 분명히 나눠놓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 단독주택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한국 사람이 미국의 아는 사람 집에 방문한다면 아파트 살던 사람이 단독 주택을 구경가게 되기 때문에 각 층의 쓰임새를 잘 알고 가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1층에는 부엌, 식당 (dining room), 응접실 (living room), 가족들 모이는 거실 (family room)이 있다. 손님이 온다면 1층에서 왔다갔다 한다. 이런 이유인지 1층에 있는 화장실을 powder room이라 부르고 guest bathroom이라 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욕실이 딸려있는 경우가 드물다. 잠시 방문한 손님이 목욕을 하는 경우는 없을테니까.

2층은 집주인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침실이 다 여기 있다. 미국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해서, 허락 없이 2층에 올라가는 것은 대단한 결례이다. 'Devil wears Prada' 영화에도 보면 주인공이 2층 올라갔다가 집주인이자 직장 상사인 악마의 노여움을 사는 장면이 있다. 그냥 혼자 올라간 것도 아니고 그집 애들이 올라오라고 해서 갔으니까 주인공만 억울하게 됐다. 그 상사가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설명되었기 때문에 2층 올라갔다가 들키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보면 '어이쿠 시발' 하고 놀랄 장면인 거다. 내가 저 영화를 봤을 때는 미국 문화를 몰랐기 때문에 상사의 지랄맞음을 강조하는 에피소드 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다른 집에 초대되어 간다면 행동 반경을 1층으로 제한하는 것이 안전하다.

지하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집 애들의 나이에 따라서 용도가 갈린다. 애들이 어리면 애들 맘껏 난장 피우면서 노는 공간이다. 그 집 장난감은 다 거기 있다. 아무래도 애들이 어리면, 놀러오는 친구 가족들의 애들도 어릴 것이고, 애들 지하실에서 맘껏 놀게 해두고 어른들끼리 1층에서 노는 거지. 애들이 크면 저렇게 안 논다. 그래서 조금 어른스런 취미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뀐다. 풀 테이블을 놓기도 하고 미디어룸을 근사하게 만들기도 하고 아예 술먹는 바를 설치하기도 한다.

또 하나 한국과 큰 차이점은 담벼락이 없다는 거다. 있다고 해봐야 백야드를 둘러친 허리 높이 정도의 담장 밖에 없다. 집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이 없으므로 앞마당이 길을 향해 열려 있고, 심지어는 집 안까지 어느 정도 들여다보인다. 물론 여기서 들여다보이는 곳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인 1층 밖에 없고 대충 커튼 같은 걸로 가려놓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뚫려 있는 게 맞다. 반면 백야드는 어느 정도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담벼락이 없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정말 많은 의미가 있다. 일단 집에 앉아서 길에 돌아다니는 이웃들을 다 볼 수 있다. 앞마당에 의자 꺼내놓고 앉아있으면 이웃들과 다 인사를 하게 된다. 이러면 동네 사람들과 아주 빠르게 안면을 튼다. 한국에서 주택에 살았던 적도 있는데, 솔직히 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다. 부모님은 아셨을 수 있지만. 그리고 또 무시무시한 의미가 하나 더 있는데, 우리집의 외관과 정원을 이웃들이 다 볼 수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야 아무리 고급 주택가에 가도 보이는 건 담 밖에 없으니 상관이 없는데 여긴 그냥 다 보인다. 남한테 보이는 곳과 안보이는 곳이 같을 수는 없는거다. 이러니 정원과 주택의 외관을 꾸며야 한다. 그냥 잔디도 다 죽어 있고 나무도 없이 살아도 되긴 하지만 동네 물 흐리는 집으로 찍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말 열심히 집을 꾸민다. 특히 연말이 가까워 오면 집 앞 나무에 전등을 둘러놓는 등 regular maintenance 이상이다. 또 집을 꾸미거나 앞마당의 낙엽을 쓸거나 집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웃들과 안면을 틀 수 밖에 없다. 나도 정원에서 풀 뽑거나 물 주다가 동네 사람들한테 인사 다 했다.

요약하자면 '정원을 열심히 가꾸고 꾸민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집을 고친다'. 여기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집은 끊임없이 손을 보면서 사는 공간이다. 한국 사람들이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미국 사람들이 더 하다. 한국에서는 집에 뭔 가를 더하고 싶으면 이사를 가지 몇 번씩이나 리모델링을 하면서 사는 사람 못봤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처럼 이사를 자주 다니는 대신 집을 자주 고친다. 와인 셀러를 만들었다가 사우나를 만들었다가 등등 집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얼마나 관심과 애정과 일손을 많이 쏟아붓는지 짐작이 되시는가? 어지간한 집에는 단골 리모델링 업체가 있을 정도이다.

그럼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나도 저러면서 사는거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집 고치는 데 상당한 돈을 썼다. 그런데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집 안만 그런 게 아니라 바깥쪽에도 하려고 준비중인 프로젝트가 많다. 그냥 남들 다 하니까 그런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느낀다. 이건 내가 마이너리티인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20 년 전 한국에서는 차 번호판만 봐도 어느 동네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친구분 중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경기도 번호판을 단 차만 보면 그렇게 욕을 해댔다. 경기도 차들이 운전을 더럽게 한댄다. 솔직히 난 거기 동의하지 않았고 이해도 잘 안됐다. 당시 나부터도 운전을 꽤 험하게 했었으니까. 나이가 더 들고 여러 경험이 쌓이다보니, 물론 저게 본받을만한 행동은 절대 아니지만, 편을 나누고 나와 다른 사람을 욕하고 경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 이사와서 이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다보니 niche.com에서 읽은 어느 동네 리뷰가 생각났다. 동네는 좋은데 어느 정도 수입이 높지 않다면 여기 오지 말어라. 와도 편하게 못 산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게 이해가 되더라. 아이도 키우고 하면서 살려면 대충 남들 하는 만큼은 따라 해야 할 게 많을텐데 그걸 못할 바에는 다른 동네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게 낫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남들만큼 안하고 살면 웬 동양인이 이사와서는 동네 물을 흐린다고 찍히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이 된다. 이게 기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실제 어머니 친구분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편한대로 사는 미국이라지만, 나는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더더욱 나쁜 쪽으로 튀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연말에는 우리집도 장식을 많이 하려고 이것저것 좀 샀다. 아직 거실에 소파도 없는 집에서 이게 우선순위는 아니어야 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러고 살면 집에 애착도 더 생길 것 같다.

우리집은 아니고 우리 동네 어느 집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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