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과 선동열
이정후가 지난 시즌 타격왕이 되면서 부자 타격왕을 이뤘단다. 자연스레 이종범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보다 열살 스무살 어린 야구팬들은 이종범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종범과 선동열은 롯데 팬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먼저 선동열 이야기를 해보자면, 진짜 몸 푸는 것만 봐도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롯데가 해태보다 약팀이었으니까 경기를 보면 대충 다 지고 있다. 그런데 뭔가 불씨가 살아날 것 같으면 선동열이 몸을 풀었다. 그럼 뭔가 분했다. 불행한 예감도 엄습해왔다. 그리고 결과도 똑같고 말이지. 나중에는 선동열이 몸을 풀면 난 욕하면서 TV를 껐다. 롯데 타자들이야 당연히 그에 상대도 안됐고, 롯데 투수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벼볼 구석이 없었다. 내 기억에는 박동희가 보통 142-144 정도의 공을 던졌다. 맘먹고 빠르게만 던지면 속도는 더 나온다지만 게임에서는 저 정도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 날 경기에 나온 투수들 중에서 가장 빨랐다. 그런데 선동열은 보통 146-148을 던지더라. 그것 말고도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가 남달랐다.
이종범은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지는 않았다. 물론 타석에 이종범이 서 있는 걸 보면 좆될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대화가 더 무서웠다. 하지만 이종범은, 선발 투수도 아니면서, 게임 자체를 쥐고 흔드는 위력이 있었다. 이종범이 뭐 잘 치니까 1루로 가면, 뛸듯 말듯 존나 깔짝댔다. 이번에야말로 2루로 뛰어갈 것 같아서 포수가 급하게 공을 빼면, 이종범은 그냥 1루로 귀루한다. 이 짓 두 번하면 타자에게 볼을 두개나 벌어준다. 이 타자가 아웃되더라도 다음 타자가 들어오면 똑같은 짓을 또 한다. 이러다가 실책이 나오고 투수가 무너지고 등등 하면, 나는 그제야 이게 다 이종범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건 스탯지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타율, 도루 갯수 이상의 공헌을 하는 선수였다. 이래서 김응룡 감독이 이종범이 해태 전력의 반이라고 했던 것 같다.
상대편 입장에서 야구를 보면, 진짜 이종범은 똥줄을 타게 만드는 선수였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맨날 져도 이정도인데, 해태를 응원하면서 봤으면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거기다 선동열까지 있었으니. 내가 2009년 미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 야구는 정말 즐겨 봤는데, 이종범만큼 야구의 스릴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는 없었고, 선동열만큼 압도적인 선수도 못봤다. 손민한이 최고 투수였고, 이대호가 최고 타자였지만 이 둘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아무리 내가 꼴빠지만, 사실이다.
이정후가 그들만큼 팬들에게 재미를 주는 선수가 되고, 또 미국으로 온다면 어찌 좋지 않겠나. 메이저에서 뛰는 한국인 타자들은 솔직히 뭐... 대단히 뭘 하진 못했다. 이대호도 활약은 별로였고... 강정호가 좀 잘 될까 했는데 왜 술먹고 운전을 쳐해가지고 말이야. 아무튼 남자는 여자 앞에서 만용 부리면 좆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