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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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owitz 2022. 4. 13. 04:18

마블에서 나온 '샹치'라는 영화를 봤다. 비록 '아이언 맨'을 흥분하며 보긴 했지만, 그건 공돌이가 주인공이자 공돌이가 뭘 만드는 게 주 내용이라 그랬던 것이고, 마블 영화를 그리 즐겨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걸 찾아본 이유는 우슈 미국 국가대표 선수인 친구가 무술 장면에 대해서 호평했기 때문이다. 액션 장면 하나는 잘 뽑았겠구나 싶어서 이 참에 마블 영화 하나 본 거다. 그런데 솔직히 구린 영화였다.

우리 부모님과 우리 마누라, 그리고 본인들까지 인정하는 사실인데,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좀 외모가 험하게 생겼다. 서류상으로는 다들 훌륭한 애들인데 모아놓으면 무슨 조직 폭력배로 오해받기 딱 알맞다. 그런데 여기 주인공을 보자마자 꼭 이 무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친근감이 들었다고 할까? 도저히 멋있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영화에서 연출을 멋있게 해주기를 바라며 플레이어를 돌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가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장면은 없었다. 이 심각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멋지지 않음이 바로 이 영화의 모든 것임을 왜 이 때는 알지 못했단 말인가.

그런데 갑자기 양조위 형님이 나오시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양조위 형님이 무술영화를 다 찍으시고. 고뇌하는 양조위 형님. 익숙하다. 솔직히 양조위 형님이 주인공보다 더 멋졌다. 이건 이 형님을 몰랐던 미국인 관객의 눈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탁월함을 느낀 건 양조위 형님 얼굴을 봤을 때 뿐이었다.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액션 장면은 훌륭했지만, 그것도 이미 성룡이나 이연걸, 견자단 같은 대배우들이 보여준 것과 비슷했다. 물론 그들과 비슷했다는 건 대단한 칭찬이긴 하다. 나처럼 홍콩 무술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미국인 제작자나 관객들에게는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을 발굴해봤자 여기서 끝이다.

주인공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걸로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동양인이 많다. 우리 동네에서는 육체노동 하면 당연히 스패니시 계열 사람들이 한다고 여기는데, 거긴 그런 일도 동양인이 많이 한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동양인이 잘 자리잡은, 뭘 해도 괜찮은, 도시라고 하기도 한다. 빅 테크 기업 (엔비디아) CEO에도 동양인, 쓰레기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중에도 동양인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뭐랄까 좀 더 풍성한 동양인에 대한 묘사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걸로 설정된 게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의 모습'에 집착한다.

그냥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 거기서 생각나는 건 대충 다 나온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누른다는 식의 전재는 숱한 홍콩 무술 영화, 와호장룡, 심지어는 북두신권에서도 우려먹었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요괴 같은 게 나오길래 '제발 용만 나오지 말아라' 했는데 어김없이 용이 날아오를 때는 실소가 나오더라. 오리엔탈리즘만 식상했나? 그럴 리가 있나. 조연들은 클리셰 범벅이었다. 의리있는 까불이는 도대체 얼마나 얼마나 광범이하게 우려먹어진 유서 깊은 캐릭터인가? 심지어 '옹박'에도 이런 애 하나 나온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이따구 영화가 21세기 한복판에 튀어나왔을까? 동양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동양인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감독인지 각본가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그런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냥 여기저기 자기가 잘 모르는데 줏어들은 것들 그런 거 짜집기해서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얄팍한 오리엔탈리즘과 클리셰 범벅의 영화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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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잴 워싱턴 형님의 명언이다. 남이 내 이야기를 진실되게 써주기를 바라는 건 헛된 꿈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링크드인 프로파일만 보고 지어낸다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겠나. 아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분명 웃기고 자빠진 이야기가 분명할 터이다. 누가 나에게 어느 백인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삶에 대해서 쓰라고 해도 다를 리 없다. 아마 그는 어린 시절 동굴탐험을 하고 고교시절에는 마칭밴드를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갈 것이다. 그냥 내 백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부인양 쓰게 될 거다. 물론 거기에 대한 깊은 이해는 당연히 없기 때문에 그냥 피상적인 내용에 그칠 것이다. 거기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런 저런 미국 이야기를, 개연성이 있든 없든, 섞어댈 게 뻔하다. 팔아먹어야 하니까. 물론 진짜 미국 백인이 보기엔 황당할 뿐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구렸다고 해도 전혀 제작자를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제부터 미국 사람이 만든 동양인 이야기는 안보는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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