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노래 표절에 대한 기억 하나

Markowitz 2022. 7. 15. 06:37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일본에 왕래를 자주 하셨다. 일본에서 뭘 사오시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 중에 CD가 껴 있었다. 음악 같은 건 안 들으시는 분이시라, 오디오 샀다가 사은품으로 받으신 게 아닌가 싶은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난 들어봤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90년대 말까지도 보통 사람들이 일본 음악 듣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일본 노래 CD를 갖고 있는 사람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다 털어도 나 밖에 없었겠지. 뭐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슨 보물상자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곡이 지나치게 익숙하게 들리더라. 연주곡이었는데, 김원준의 "짧은 다짐"과 흡사했다. 클라이막스 부분의 멜로디가 그냥 똑같더라. 당시의 나는 이게 표절이다 뭐 이런 생각은 못했고, 그냥 신기하다면서 친구들한테 들려줬다. 친구들의 반응도 다들 너무 똑같다 신기하다 뭐 이랬었는데, 나중에 진짜 그 노래가 좀 문제가 되었던 것 같더라.

내가 앞서 그 CD를 보물상자 같았다고 했는데, 이게 진짜 보물상자였던 직업 음악인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난 단지 희소성으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실용적인 의미도 있었던 게지. 팝송이야 가끔 배철수 아저씨가 소개시켜줘서 찾아 들었지만 일본 노래는 아예 수입이 안되었으니까 대학 시절 선배들에게서 받은 족보만큼이나 소중한 보물창고 아니었겠나.

하지만 그들을 막상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 듣기 어렵던 시절, 해외 음악을 수입해와서 내수용으로 손 좀 봐서 나름 우리의 귀를 풍성하게 해줬잖냐. 해외에서 유행하는 제품 보고 비슷하게 국내에서 따라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야 저작권 개념도 희미했으니 크게 나쁜 짓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장이 나뉘어져 있기도 했고. 그래도 너무 대놓고 베끼는 것과 그 짓을 요즘까지도 하는 건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땐지 그 이후인지 모르겠는데 Milli Vanilli의 Girl You Know It's true를 듣고는 진짜 충격을 받았다. 뭐 악기가 뭐고 코드 진행이 뭐고 간에, 서태지가 이 노래의 내수 버전을 만들어다가 데뷔를 했구나 싶더라. 좋은 노래 들려줘서 고맙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충격 받을 일은 안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위에 김원준을 언급한 김에 말인데, TV에서 우연히 김원준을 본 적이 있다. 가수와 팬클럽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대충 이런 장면이었다.

김원준: "난 너희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 공부에 충실했으면 좋겠어."
아이들: 실망 섞인 웅성거림
김원준: "오늘 좀 여유로웠지?"

이걸 보고 참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참 교양 있게 하고 말이지. 생각해보니 이게 다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 다닐 때 일이네. 갑자기 그 때 하던 게임 Bubble Bobble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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