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참 훌륭한 영화다
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는 묘하게 현실적인 점이 있어서 좋아한다. 오버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몰입이 잘 되더라. 1917은 전쟁영화인데도 참으로 차분하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들리니 역량이 대단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소재부터가 특이하다. 전쟁에서의 주역이라면 아마도 전투원들 혹은 그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부들일텐데, 여기선 주인공이 전령이다. 트레이딩펌으로 치자면 실제로 거래를 해내는 트레이더도 아니고 백오피스도 아니고 백오피스보다 훨씬 주목을 못 받는 사내 메신저 담당 직원 같은 거 아닌가. “Wall Street” 3편을 찍는데 주인공이 사내 전산 시스템 관리자라면 이야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텐데 이 영화는 그냥 “Go!”를 외친다.
근데 이 전령이란 역할도 만만한 게 아니더라. 대사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왜 널 골랐냐고? 난 그냥 좀 쉬운 일 시키는 줄 알았지.”
전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시체에 뒹굴기도 하고, 부비 트랩에도 걸리고, 적군도 피해가야 되고 등등. 이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롱 테이크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붙어서 관찰을 하는 느낌이다. 아마 이렇게 의도가 된 것이겠지. 마치 나도 옆에 있는 듯 한 현장감. 이러니까 호흡도 끊어지지 않고 긴장감도 유지되는 것 같다.
또 훌륭한 점 하나가 배우들이다.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걔네들은 다 단역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다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월드워 Z’ 주인공은 브래드 피트다. 그러니까 좀비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주인공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매우 재밌는 영화였지만 그랬다. 그런데 여기선 주역들이 다 모르는 배우들이니까 진짜 얘네들이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느끼는 희노애락이 그대로 전달이 되면서 거기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같이 넘어 온다. 인간다움이 미덕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곳이 전쟁이다. 전투원들의 목숨이 무척이나 소중한 듯 하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사지로 내몰 것이라는 푸념. 언제든 갈려나갈 운명인 군인들, 그리고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전달하는데 영화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정말 훌륭하구나 하고 혼잣말을 했다.
뭐 내 취향에 그랬다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는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난 감정 과잉인 영화는 대부분 안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7번 방의 선물’, ‘명랑’, ‘국가대표’, ‘해운대’. 얘네들 진짜… 무슨 바바리맨이라도 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