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이상적인 월드컵 매치

Markowitz 2022. 12. 8. 07:08

한 2주 전인가 직장 동료 하나가 월드컵 뭐 볼 거냐고 물어보대. 난 뭐 월드컵이 올해 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요새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난리인데 어찌 모르냐 하길래 난 집에서 애들이 난리라고 했다. 진짜 애들에 비하면 월드컵 따위야 뭐…

하여간 월드컵이 시작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이 보고 싶은 월드컵 매치에 대해 이야기하더라. 나는 프랑스 대 브라질 매치가 이뤄지면 정말 멋진 축구 한 판이지 않겠느냐 이런 나이브한 소리나 했는데, 누군가 내놓은 이 시나리오에 정말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월드컵 결승, 아르헨티나 대 포르투갈. 정규시간과 연장을 모두 0-0으로 마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고 결국 마지막 키커에서 이 모든 게 결정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승의 행방을 짊어진 두 키커는 바로 메시와 호날두. 둘 다 최고의 선수고 누가 더 낫냐 어쩌냐 뭐 말이 많은데 이제 간단해졌다. 여기서 넣고 우승을 이끄는 선수가 최고로 평가 받겠지. 그들의 치열했던 커리어가 바로 이 PK 한방으로 결정나게 되었다. Winner takes it all!

캬 정말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일어나는 시나리오 아닌가. 이대로만 되면 진짜 길이길이 기억될 역대 최고의 오금 저리는 매치겠다.

아쉽게도 엊그제 한국은 16강에서 브라질에게 털리고 말았다. 난 솔직히 2002년 이후로 월드컵 게임을 풀로 본 적이 없다. 하이라이트만 챙겨봤지. 그렇게 짧은 영상만 봐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많이 지쳐 보이더라. 브라질은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 짓고 체력 안배까지 해가며 여기 온 모양이고 대한민국 팀은 그럴 여유가 없었겠지. 이런 것도 실력이고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내가 국대 경기에 몰입하고 뭐 그런 편은 아니어서이기도 하지만 포르투갈 전에 보여준 역전골이 빼어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축구와 나의 관계는 우리 5살짜리 첫째가 동네 축구팀에서 구멍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도이기 때문에 뭐라 전문적인 평은 할 처지가 못 된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수준 높은 골이었다. 절체 절명의 순간에 찾아온 단 하나의 기회, 그걸 살리기 위해서 발휘한 기술, 침착함, 판단력, 투지, 그리고 실행. 이렇게 완벽한 골은 내 인생에서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아재 티 내는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전성기의 지단과 트레제게 정도 되어야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인데 한국 선수들이 이 수준에 도달해 있단 말인가. 선수들의 기량과 호흡은 2002년을 훌쩍 뛰어넘은 것 같더라. 농담이 아니라 어지간한 선수였다면 우물쭈물 하다가 똥볼이나 찼을 거라 확신한다.

2002년 당시에도 놀란 적은 있지. 내가 기억하는 골이 하나 있다. 본선은 아니고 평가전이었던 것 같고, 선수는 박지성. 멀리서 날아온 공을 간결하게 트래핑해서 받은 후에 떡대 수비수를 달고 골대 아래쪽 구석으로 강하게 차서 넣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셰브첸코 같은 유럽 상위 리그 팀 에이스들이나 보여주는 장면 아닌가. 이걸 비록 한 번이라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은 어쩌다 그 수준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 바로 그 유럽 팀 에이스가 있고, 그를 받치는 선수들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에 있어 보인다. 2002년 대표팀이 더 나아 보이는 건 체력하고 힘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원 없이 훌륭한 축구를 보여주고 퇴장했으니 이제 남은 팀들이 부상 좀 당하지 말고 멋진 장면 많이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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