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사기 당한 친구
한국에 있을 때 일인데, 어쩌다가 재무설계사 한 분을 알게 됐다. 정확히 명함에 뭐라고 되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국은 뭐 보험 팔고 펀드 가입시키고 이런 일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상한 소리도 안 하고, 그냥 정상적인 얘기만 하더라고. 그래서 친구에게 소개시켜줬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에게 소개시켜줬단다. 뭐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 없다. 편의상 이 마지막 친구를 A라고 하자.
난 미국으로 왔고 한국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A가 그 사람에 사기를 당했단다. A가 그 사람에게 돈을 맡겼고 월 얼마씩 배당금 형식으로 주기로 했는데, 부도를 낸 거지. 파생상품 중에 CLO하고 좀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부도가 난 거다. 원금 보장이라고 도장까지 찍어 줬는데 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이미 그 사람이 빚이 너무 많고 재산이 없어서 받아낼 방법이 없었단다.
오해할 수 있는 게, 그 사람이 본인이 다니는 자산운용사의 상품을 A에게 팔았는데 그 상품이 어찌 됐다 소리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내 친구한테 돈을 받고 운용해준다고 하다가 그래 된 거였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이해하는 데, 한참까지는 아니어도, 시간이 좀 걸렸다. 그만큼 내게는 상식 밖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친구에게서 전말에 대해서 좀 들어보니까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서 운용을 하고 어쩌고 하려면 거기에 맞는 전문 인력들, 그 친구 말로는 나 같은 사람들, 모아다가 설계를 하고 해야 할텐데 영업 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그러다가 사단을 낸 것 같다네. 사실 생각해보면 전문 인력들이 모여서 남의 돈을 받아서 굴려주는 데가 바로 자산운용사이고 얘네들은 금감원의 빡센 감시를 받는다. 얘네들이 운용을 어찌하는지 돈은 또 얼마가 남아 있는지 항상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한테 개인적으로 맡긴 건 감시는 개뿔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알게 될 때는 이렇게 사고가 터졌을 때 뿐이지. 참 제도권 금융업과 금융 시스템이란 걸 왜 그리 우습게 알았을까 안타깝고 또 미안했다.
난 재야 고수가 뭐 어찌 해준다 이런 거 절대 믿지 않는다. 물론 재야 고수는 있다. 나도 그런 사람 하나 안다. 그런데 그 고수가 뭐하러 날 도와주냐.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 꺼 굴리기도 바쁠테고 그것만 해도 충분히 돈을 벌고 있을텐데 뭐하러 내 일을 봐주겠나.
참 이게 전형적인 폰지 사기에 수익률이 말도 안되는 수준인데 어찌 이걸 믿었을까 싶었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저리 사기를 당하는 일도 없었을텐데 너무 미안하더라. 나한테는 이상한 제안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랬더니 걔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더라. 그거 다 사람 봐 가면서 하는 거라고. 그 친구 A는 그 사건 말고도 황당한 투자를 많이 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단다. 이상한 코인, 무슨 기획 부동산 등등… 가끔 벌기도 하고 또 사고도 당하면서 꿋꿋하게 그러고 있단다. 하긴 걔가 나한테 좀 위험한 짓에 대해서 자문을 구한 적이 있긴 하지. 그게 걔한테는 가끔 하는 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학창 시절에는 그냥 만화책 좋아하고 공부 잘 하고 착실한 애였는데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집이 좀 잘 사니까 그게 감당이 되는 모양인데 이제라도 제도권으로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