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의 첫 영화관 나들이
우리 애들 상태를 보자면, 아직 영화 하나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디즈니 만화도 끝까지 못 본다. 빌런들이 너무 무섭단다. 좀만 무서운 장면 나오면 나보도 끄라고 난리다. 생각해보니 우리 둘째는 스타워즈 3을 끝까지 봤구나. 그러니까 대놓고 가족용으로 만든 영화를 역사적인 완성도로 만들어 내야만 우리 둘째라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높은 허들인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지. 그런 우리가 얼떨결에 영화관에 가게 됐다.
마누라도 없는 일요일, 나하고 비슷한 처지의 우리 첫째 친구 아빠한테 연락해서 둘이 플레이데이트를 시켰다. 거기다 우리 둘째까지 껴서 잘 노는데 갑자기 딸 친구가 지금 몇시냐고 묻는다. 난 1시 반이라고 대답해줬지. 그니깐 얘가 글쎄 오늘 아빠와 1시 45분에 영화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빨리 집에 가야 된단다. 그래서 급히 얘들을 다 태워서 그 친구 집에 내려다줬다.
내가 가보니까 이미 표를 사 놨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애가 기억하고 있으면 가고 아니면 안 가도 되는 상태였지. 이미 1시 45분 영화는 늦었고 다음 영화인 3시 30분 꺼를 보자고 하더라고. 근데 의외로 우리 딸이 영화관에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우리 둘째도 경쟁심이 발동했는지 자기를 빼놓지 말란다. 뭐 결론적으로 애들 다섯에 어른 셋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됐다.
우리가 볼 영화는 Despicable Me 4로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다. 표가 몇 장 남아있지 않아서 여기저기 떨어져 앉게 됐다. 하지만 예매가 된 게 다행이다. 이렇게 급할 때는 Apple Pay가 참 편하다. 다음 문제는 과연 우리 애들이 끝까지 얌전히 볼 수 있느냐인데… 내가 신신당부를 했지. 영화관에서는 아빠가 영화를 멈출 수가 없다.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참고 봐야 된다고. 애들도 마음을 굳게 먹고 영화관으로 향했으리라.
사실 이 동네 이사와서 나도 영화관에 처음 가봤다. 우리 첫째는 친구집에서 출발하니까 아직 어딨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둘째만 데리고 갔지. 갑자기 얘가 젤리를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라. 근데 영화관 하면 팝콘이잖아. 팝콘으로 딜을 쳐서 자리로 데리고 갔지. 나는 솔직히 이런 영화관 처음 와봤다. 자리가 아주 넓고 거의 누워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 나는 구석 자리면 목이 아플 정도로 틀어 봐야할 줄 알았는데, 첫줄에 앉았어도 괜찮았겠다 싶더라. 거기서 우리 둘째는 거의 누운 자세로 팝콘을 먹으며 예고편을 보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couch potato의 표준 자세가 나오는데 참… 사실 이 자세는 집에서도 못 해본 거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보니, 영화관이란 그냥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이 전체 경험을 파는 곳 같다. 영화를 고르고, 자리도 고르고, 또 먹을 걸 사들고 자리에 앉아서 친구들이랑 왁자하게 웃으며 영화를 보고는, 일어나서 친구랑 또 영화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경험 전부를 말이다. 집에서 오스카상을 탄 영화를 보는 건 대단한 추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이렇게 영화관에 온 경험은 추억이 되니까. 우리 아이들 다 재미있었고 또 오고 싶다고 한다. 우리 첫째도 무서웠지만 끝까지 봤다고 하네. 다들 좋은 기억을 만든 건 확실하다. 그 와중에 우리 둘째는 다시 젤리를 사달라며 난장을 피웠다. 오늘 팝콘을 먹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건 아빠가 원해서 먹은거지 자기가 원한 건 먹지도 못했다고 그러네. 또 아들한테서 “the worst dad”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