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한 내 생각 – 애를 잡으면 안 된다
대충 앞에서 다 한 얘기긴 한데 좀 더 자세히 써볼란다.
여기 미국에서 obsessive parenting 중에서도 좀 Asian version인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애를 잡는 거다. 뭐 이거 비슷한 거 다 해당 된다.
• 시도 때도 없이 공부 하라고 잔소리 하고
• 애가 쉬는 꼴을 못 보고
• 공문 수학 같은거 문제 100개 던져주고 얼마 안에 다 풀어라 하고
• 시간 넘기거나 틀린 거 있으면 소리 지르고 때리고
• 등수 떨어지면 소리 지르고 때리고
• 건너 건너 아는 누가 뭐 했다 그러면 너는 왜 못 하냐면서 또 소리 지르고 때리고
• 문제 푸는 데 비효율적인, 그러니까 빨리 못 푸는, 방법으로 하면 또 소리 지르고 때리고
이해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애를 공부 잘 하게 만들고 싶어서 이러는 거. 근데 누가 이해해준다고 이게 잘하는 짓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일단 이러기 시작하면 애가 상위권으로 가는 건 안 된다고 봐야 된다. 간혹 집에서 저 꼴을 당하는 데도 잘 하는 애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중학교 까지만 잘 하다가 고등학교만 가도 쳐진다. 만약 고등학교에서까지도 잘 한다 그러면 진짜 걔가 대단한 거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바보짓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잡지 않으면 훨씬 잘 할 애인데 말이다. 진짜 지랄 염병에 지나지 않는 짓인데 부모가 이러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본인이 공부를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기 때문에 저 지랄을 잘 하는 짓인 줄 알고 하는 거다. 물론 내가 입 밖으로 이런 말을 해본 적은 없다. 내 블로그니까 내 속 마음을 털어 놓는거지. 아 시원해.
저렇게 해서 도움이 되는 애들이 있긴 있다. 소위 바닥에 깔린 애들이지. 머리가 진공 상태인 애들은 저렇게 해서 머리에 조금이라도 뭐를 넣어주는 게 도움이 된다. 고등학교를 가도 시험에 안 나올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게 있잖아. 욕 쳐들어 가면서 그런 거라도 머릿속에 넣어두면 그 문제는 풀 수 있다. 기본적인 사칙 연산 못 하는 애들한테 스파르타식으로 조지면 간단한 산수는 확실히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효용이 있긴 있다. 그나마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상도 많이 쳐줘봐야 10명 중에 바닥 5명, 뭐 거기서 한 두명 더하고 빼고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성적도 바닥이고 공부를 할 생각이 없는 애들은 뭐 잡든 말든 알아서 하시라. 하지만 애가 공부를 할 의지가 있다면, 목표도 상위 10% 혹은 그 이상이라면 저 방법은 관둬야 된다. 그 때부터는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는 억지로 쓰게 만들 수가 없다. 오히려 저런 식으로 애를 조지면 머리가 더 안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데 공부를 못 했던 부모들은 이 단계에 와 본 적이 없다. 본인이 아는 공부는 앞에서 말한대로 바닥에서 조금 올릴 때 썼던 방법 그것 밖에 없지. 비록 바닥에 깔린 애들에게조차 그게 최선의 방법이 아닌데, 그게 본인이 아는 세상의 전부이다보니 공부라는 건 마땅히 그런 줄 알고 자기 애한테 고대로 하는 거다. 애를 더 잡으면 성적이 쭉쭉 올라갈 걸로 굳게 믿고 저 지랄을 하는 건데… 에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얘길 해줘도 꼭 이런 소리 하는 사람 있다.
“아닌데. 내가 몽둥이 갖다 놓고 애를 조지면서 공부 시켰더니 빨리 알아먹고 잘 하게 되던데.”
그래 뭐 그렇게 동작하는 부분이 있긴 있다. 이미 학문적으로 다 증명이 끝나서 이러면 당장 뭐가 되는 이유와 이 짓을 계속 하면 안 되는 이유까지 다 밝혀졌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 ‘힐빌리의 노래’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물론 학술 논문을 인용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데 그 결과로 나오는 것 중 하나가 “Fight-or-flight” 반응이란다. 커다란 개가 짖으면서 쫓아오면 똥 마려운 것도 까먹고 평소에 달릴 수 없었던 속도로 도망을 간다거나 갑자기 모든 게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면서 근처의 나무 뿌리를 뽑아다 휘두를 수 있는 게 이 때문이다. Nadine Burke Harris 박사의 얘기로는 “숲속에서 곰과 마주쳤을 때는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그 곰이 매칠 밤 창살을 넘어 집으로 찾아올 때에는 문제가 된다.” 그렇게 만성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담당하는 그 뇌 부위도 만성적으로 활성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다.
애가 매일 지뢰밭을 걸어다니는 심정으로 집에 있어봐라. 그 망할 스위치가 항상 켜져 있으니 두뇌의 상당 부분이 “fight-or-flight” 준비를 하느라 쓰여지고 있다. 뇌과학 같은 데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딱히 논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거나 뭐 차분하게 공부가 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두뇌를 100% 써서 공부를 하는 것과 50%만 쓸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어찌 안 날 수가 있겠나. 사람이 불안하면 두뇌 정상 가동이 안 된다니까. 그래도 저 방법이 옳다고, 주로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굳게 믿는 분들이 계시지. 왜 그런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게 니가 공부라는 걸 아주 조금만 해서 그렇다. 평소에 안하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가 하는 공부 쳐 맞으면서 하다보니까, 그나마 맞으면서 한 게 기억이 잘 나더라 이래 되지. 그런데 실제로 한 공부의 양 자체가 얼마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니가 공부를 너무 조금 해서 그렇게 느꼈을 뿐이라니까.
공부라는 건 매일 하는 거다. 하나의 습관처럼 해야 잘 할 수 있는 게 공부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저 스위치가 항상 켜져 있으면 좆된다. 다시 강조하자면 매일 창문으로 곰이 넘어오는지 마는지 걱정할 필요 없이 편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해야 공부가 잘 된다. 나도 쉬운 문제는 그냥 옆에서 누가 야동 보고 게임을 해도 잘 푸는데, 정말 어려운 문제는 100% 집중하지 않으면 잘 못 푼다. 그리고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애가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어떻게 똑똑한 사람 근처에 갈 수 있겠나?
시험도 마찬가지인데, 준비를 아무리 잘 해놔도 항상 시험을 조지는 애들이 있다. 그게 시험 결과로 애를 뚜드려 잡아서 그렇다. 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집에서 존나 개털린다는 걸 아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시험지만 받아들면 불안한 거지. 그러면 100% 두뇌를 가동하지 못하는 거고 아는 것도 못 풀고 나오는 거다. 이건 본인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 아는 걸 왜 틀려 왔냐고 씩씩거리는 바로 그대 때문에 받아든 결과다.
이래서 Freakonimics에서 나온 말이 “니가 애한테 뭘 해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니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지.”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