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센 추수감사절 주간
추수감사절이 있는 이 주는, 여유로운 휴일 뭐 이런 분위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매년 비슷하긴 하지만 일단 올해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왜 이렇게 일이 많으냐 하면 일단 애들이 학교를 안 간다. 가만 놔두면 자꾸 아이패드만 보고 싶어해서 애들을 바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게 베이스로 깔려 있는 상태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는거지.
먼저 나는 추수감사절 당일 우리 가족이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마누라가 스테이크 요리를 부탁했는데, 그냥 스테이크가 아니고 이런 저런 장식이 들어간 고든 램지 레시피다. 뭐… 레시피만 고든 램지고 실행은 내가 아닌가. 시간이 오지게 걸리는 건 당연지사고, 칼질을 어찌나 했는지 테니스를 못 칠만큼 손목이 아팠다.
추수감사절 식사를 넘겼으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야 한다. 지하실에 짱박아둔 트리를 꺼내서 조립해야지. 애들이 옆에 와서 이것 저것 만지고 하다가, 당연한 듯이 뭘 또 부수더라고. 그것 다 치우고 어쩌고 하느라 진짜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트리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호박 테마의 장식은 다 들어가고 크리스마스 테마로 다 바뀌었다. 그런 작은 것들은 마누라가 했고 난 애들하고 놀아줬지.
크리스마스 장식이란 게 집 밖에도 있다. 지난 할로윈에 해서 대박 효과를 봤던 방법대로 셀로판지를 잘라다가 landscape light에다가 붙였다. 크리스마스 색깔은 빨강과 초록인데, 아무래도 밝고 축제 같은 느낌으로 하려면 빨강이 낫지 싶었다. 그리고 차고와 정문 밖의 조명은 초록색으로 전구를 바꿨다. 이게 말로는 간단하지만 여러 장의 셀로판지를 잘라서 최적의 두께를 찾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 나가서 작업하는데 날씨도 춥고.
아 근데 글쎄 마누라가 너무 심하게 타박을 하더라고. 무슨 집을 귀곡산장으로 만들어놨냐고. 그래서 사진을 찍어다가 친구들에게 보내봤는데, 뭐… 드라큘라의 성 같다고 해서, 또 나가서 다 뗐다.
창문 셋에다가 열수축 필름을 붙였다. 집이 오래돼서 그런지 어느 방은 춥고 어느 방은 따뜻하고 그렇다. 창문으로 냉기가 들어오기도 하고, 추워지니까 그런 방에는 또 결로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열수축 필름을 사다가 붙였다. 가장 큰 창문 하나 빼고는 다 나 혼자서 했다. 하고 나니까 따뜻해진 건지는 모르겠고 최소한 결로는 안 생기니까 일을 덜었지.
우리집에 냉기가 많이 들어오는 데가 몇 군데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부엌에 있는데 전구와 트림 사이에서 엄청 찬 바람이 많이 들어온다. 아무래도 여기 벽에 인슐레이션이 부실하게 들어간 것 같다. 이걸 어찌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구와 트림 일체형으로 된 게 있더라. 그걸로 그냥 그 구멍을 다 막아버리는 거지. 내가 근데 전구나 갈아봤지, 그 주위 하드웨어 구성이 어떤 게 있는지 어떻게 알겠나. 이것도 엄청난 연구 끝에 갈아 끼웠다. 하는 김에 비슷하게 생긴 전구를 다 갈 생각이었는데, 마누라가 나머지는 놔두라고 해서 남은 전등을 어떻게 리턴해야 할까 고민이 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백야드에서 정문까지 둘러 있는 전기선을 정리했다. 이게 좀 옆에 터져 나간 데가 있어서 전기 테이프로 꼼꼼하게 보수를 했는데, 안 되더라. 그냥 간단한 두개짜리 코드는 잘 되는데, 세개짜리는 안 되더라고. 하필이면 내가 쓰려고 하는게 세개짜리 코드가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전기선을 못 쓰게 됐다. 땅에 묻힌 것도 다 파 내고 해서 버리고 새 전기선을 사왔다. 이것도 종류가 많아서 애를 먹었다. 기껏 사온 게 불량인 적도 있었고 말이지. 새 전기선을 설치해야 하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미뤘다.
마당 청소도 했다. 사람을 써서 fall cleaning을 하긴 했는데, 아직 우리집 앞의 단풍 나무의 잎이 많이 달려 있었다가 이번 주에 대충 다 떨어졌다.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긁어다가 다 버리고 또 수도관에 연결된 호스도 다 정리했다. 올해 날씨가 늦게까지 따뜻한 바람에 진작 했어야 하는 일들을 못 하고 있다가 허겁지겁 해치우게 된 것이지.
겨울에 놀러 갈 리조트를 예약했고, oath ceremony 일정도 확인하고 여권 발급 등등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뭐 이게 이렇게 퉁치기에는 시간을 많이 썼다. 사실 마누라가 자기 영어 못 한다는 걸 무기삼아 이런 건 다 날 시킨다. 그런다고 딱히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마지막으로는 연하장을 만들었다. 작년도 그렇고 제작년도 그렇고 항상 크리스마스 근처까지 가서야 허둥지둥 연하장을 만들었다. 이러면 국내는 몰라도 국제 우편으로는 도저히 제 날짜에 연하장이 가지 않는다. 물론 그 때까지 기다리면 할인이 달달하긴 한데, 그 돈 없어서 연하장 못 보내는 게 아니니까 올해는 내가 빨리 밀어부쳤다.
연하장 만들어주는 사이트에서 디자인 고르고 사진 골라서 올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고 눈이 빠질 것 같은 작업이었다. 이것도 대충 다 내가 했는데, 마누라가 한 것이라고는 내가 골라놓은 스무여개의 사진 중에서 다시 대여섯 개로 추리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대도 우리 마누라 본인이 총괄해서 한 듯한 기분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참 불합리하다.
동시에 보낼 사람들 목록도 정리했다. 이사도 다니고 어쩌고 하다보니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평소에는 연락 한 번 안 하면서 연하장만 보내기는 좀 이상하잖아. 지운 사람들은 다 우리 첫째 데이케어 다닐 때 알던 사람이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우리 애들 학교 친구들이다. 우리도, 그들도 move on 하는 것이지.
티가 나는 것들만 이 정도고 기타 자잘한 것까지 생각해보니 정말 이번엔 눈코 뜰 새 없는 추수감사절이었다. 나도 좀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