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디즈니 크루즈를 다녀오다

Markowitz 2025. 1. 28. 02:24

작년 봄방학에 누가 가자고 했는데 했는데, 뭐 너무 last minute이라서 안 가고 올해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고, 아내가 밀어붙였지. 아이들을 위해서라고는 하는데, 사실은 뭐 본인이 가보고 싶어서지 뭔 애들 핑계를 대는지. 그나마 첫째 아이는 재밌어 했는데, 둘째는… 자기는 이제 다시는 크루즈 안 가신댄다.

우리가 탙 배는 Disney Wish라고 하는데, 비교적 새 배란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게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냥 top notch더라. 나는 음식에 아주 큰 인상을 받았다. 오밤중엔 모르겠지만, 항상 음식이 있다. 그 질도 매우 훌륭해서 어지간한 레스토랑보다 낫더라. 그래서 온종일 입에 음식을 달고 살았는데, 특히 아내는 살이 엄청나게 쪄서 왔다.

내가 크루즈를 처음 타봐서 비교할만한 다른 경험은 없는데, 그래도 디즈니 크루즈가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다. 디즈니의 강점이라고 해야겠다. 크루즈에서 나오는 음악은 모두 디즈니 영화에서 나온 거고, 어지간하면 누구나 다 아는 곡들이었다. 항상 어디선가는 쇼나 뭐 그런 행사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다 디즈니 것들이고. 매일 저녁마다 극장에서 뮤지컬을 했는데, 알라딘, 인어공주 뭐 이런 것들이다. 아이도 알고, 어른도 아는 것들. 어른도 즐기면서 아이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컨텐츠가 디즈니에는 쌓여 있다. 이래서 디즈니는 망할 수가 없는 회사라는 것이지.

반면 단점도 명확한데, 디즈니에 관심이 없으면 재미 없다. 하루 종일 있는 이벤트들… 억지로 보고 싶지도 않은데도 끌려가서 한 시간씩 앉아 있어야 된다는 뜻이지. 우리 아들이 딱 그랬다. 아무래도 기존 디즈니 컨텐츠가 남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구석이 적어서 마블을 인수한 모양인데, 우리 애는 아직 마블도 잘 모른다. 이러니 뭐.. 내가 다 미안하더라고. 다음 휴가는 꼭 all-inclusive 리조트에서 그냥 하루 종일 마음대로 놀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느낀 점이 여럿 있다. 플로리다주와 디즈니의 분쟁이 있고 뭐 이런 건 좀 알고 있었는데, 인어공주 뮤지컬을 보니 요즘 디즈니 컨텐츠가 왜 맛이 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1989년에 나온 만화영화를 아주 감명 깊게 봤다. 그리고 디즈니가 그러 몇 해 전에 리메이크를 했지. 리메이크작이 훨씬 못 하다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듯 하다. 나도, 비록 영화 대신 뮤지컬을 봤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리메이크작을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걸 몰랐다. 차이가 아주 조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조금의 차이가 존나 영화를 후지게 만들었다.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말이다.

일단 남녀 주인공의 매력이 없다. 원작에서는 Eric이 너무 멋있어서 Ariel이 반한다. Ariel도 너무 사랑스럽다. 딱 Ariel을 보면 사랑스러운 십대 막내 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이미지다. 그 덕에 줄거리가 진행이 된다. 근데 리메이크작의 주인공들은 그런 매력이 없다. 그러니 관객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설명이 붙는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이별을 무릅쓰고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이게 깔끔한데, 리메이크작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만큼 왕자를 사랑하는 Ariel을 관객들이 납득을 못 하는 상황이니, “나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인어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야만 한다.”라는 뜬금 없는 설명이 붙는다. 나는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아니 무슨 성전환 하는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더라. 래리 앨리슨이 스티브 잡스의 전용기를 둘러보고 말한 소감이 “내 것과 거의 비슷한데, 바꾼 부분은 잡스 꺼가 더 낫더군요.” 사실 리메이크는 이래 돼야지. 바꾼 부분이 죄다 구리면 왜 만드나.

우리가 그 쇼를 보고 객실로 돌아와서 1989년작 인어공주를 감상했다. 마누라 왈 “아니 저렇게 멋진 왕자를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놓냐.” 대신 알라딘은, 이것도 최근의 리메이크작을 갖고 만든 듯 한데, 재밌게 봤다. 여자 배우는 같은 모양인데 알라딘은 진짜 딱 알라딘 같은 애를 데려다가 놨더라고.

그리고 우리가 지난 봄에 가지 않은 것을 약간은 후회했다. 아무리 바하마라도 1월의 바닷물은 춥더라. 우리 애들은 이런 데 가도 수영보다는 모래성 쌓으면서 놀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겠지만, 물이 따뜻했다면 확실히 더 재미있었겠지. 애들 노는 걸 보니 아직 크루즈보다는 그냥 해변에서 하루 종일 노는 게 쟤들 수준에 딱 맞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부터 휴가는 다 all-inclusive 리조트로 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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