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복숭아와 야자 열매

Markowitz 2025. 3. 16. 00:02

지난 주말 집에서 쉬다가 유튜브에 뭔 추천 영상이 하나 떠서 봤다. 아마도 나처럼 미국 사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상인 모양이다. 그러니 나한테 추천이 떴겠지. 이건 진짜 미국에 온 한국 사람들을 무척이나 당황시키는 특유의 미국 문화에 대한 거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에 대한 거지. 어제 파티에서 만나서 아주 즐겁게 노가리를 깠는데, 그래서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길에서 보고 인사를 해도 그냥 모르는 사람인 마냥 지나간다거나 인사는 했어도 어제 좁혀놓은 거리는 어디 가고 다시 데면데면한 사이로 돌아가는 데 대한 내용이다.

 

https://youtu.be/qYHCv_HL-1s?si=Y0-OtCW5HT7Cozu0

 

 

워낙 정리를 잘 해놔서 그냥 이 영상이 딱 맞다.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운영해보시고 하다보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여러 깊이로 겪어보셨고, 그런 경험이 다 여기 녹아 나오는 듯 하다. 나야 뭐 그냥 백오피스에 앉아서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복닥거리니깐 이렇게 깊이 있는 내용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나 따위가 덧붙일 내용 같은 건 없는데, 나는 조금 비슷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서의 자리에 민감하고 보수적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인간 관계에서 딱 어떤 자리로 정해지면 거기서 좀처럼 벗어나는 게 안 된다. 그러니까 너와 내가 어제 학부모 파티에서 만나서 한참을 노가리를 깠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고 해서, 그러니까 잠시 가까워진 건 맞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그냥 원래 자리, 그러니까 친구라고는 할 수 없는 사이로, 돌아가는 것이지. 어제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건 그냥 내가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러니 잠시 그랬다고 다른 데서 엄청 친한 척을 하면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저 유튜브 영상의 예에서 보면 ‘너와 내가 손님과 가게 주인으로써 친해진 건 맞는데 그 외의 상황에서는 아니야.’ 뭐 이런 게 된다. 사실 나도 뭐 이런 게 있나 싶긴 하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일 같이 하고 잘 맞고 이러면 친해지고, 그러면 회식 때 옆 자리 앉아서 놀고, 또 거기서도 잘 맞으면 밖에서 만나는 친구도 쉽게 되지 않냐. 근데 여기서는 일할 때 친한 건 친한거지 직장 밖의 친구는 따로 있다 뭐 이런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로써는 이런 게 벽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학부모 모임에서 누굴 만나든지, 아이 농구 교실에서 어느 학부모를 만나서 즐겁게 떠들었든지, 한국식의 친구는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대신 그 사람들을 다시 비슷한 상황에서 만나면 또 친근하게 얘기하고 심각한 얘기도 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

이 사람들은 경계가 명확하다. 이미 성장하면서 친한 친구와 가족으로 자기 주변이 딱 차 있단 말이지. 사실 인간 관계라는 게, 그냥 전화번호부에 추가되어 있으면 그만이 아니라 계속 그 사람들에게 리소스를 할당한다. 생일 챙기고 뭐 챙기고 등등 해서 말이야. 그럼 여기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건 자기 소셜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여간해서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뭐 그래도 잘 맞고 재밌고 등등 하면 여기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말 못하고 다른 문화에서 상장한 나 같은 사람은 안 된다고 봐야지. 이건 인종 차별 같은 게 아니다. 그렇게 오해할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 인종 차별을 당해보니 아 그건 아니었구나 하고 바로 알겠더라고.

인간 관계에서 설정 가능한 자리가 많은만큼 그냥 대충 거기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는 뭐 어디 모임 가도 쌩판 모르는 사람한테는 말 붙이는 게 좀 어렵지 않냐. 그런데 여기선 그냥 헤이 하고 바로 노가리 까는데, 아주 친절하다. 일 얘기 물어봐도 잘 알려주고.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좀 선 넘어가는 호구 조사라고 여기는 것까지 첫 만남에서 다 털어놓는다. 그냥 만나자 마자 하는 얘기가 “what do you do?” 그러니까 니 직업이 뭐냐. 바로 이런다니까. 그냥 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단 친절하고 얘기 서로 잘 받아주고 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보다 개방적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선 넘어가는 행동으로 여겨지기 쉽다. 근데 이 사람이 나를 어느 자리에 수납했는지는 사실 알기 어렵다. 미국인들이야 평생 이런 문화에서 살아왔으니 잘 알겠지만 한국에서 다 성장해서 여기 온 사람으로써는 힘들지. 대충 찍어서 행동하는 건데 그러다보니 잘 못 찍을 때가 당연히 많다. 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나서거나, 혹은 너무 소극적으로 보이겠지.

뭐 하여간 그래서, 어느 중국 출신 이웃은 동아시아에서의 인간 관계를 코코넛이라고 하고, 미국에서의 인간 관계를 복숭아라고 하더라고. 참으로 딱 떨어지는 비유다.

그럼 난 어떻게 이런 문화에서 편하게 잘 지내느냐 하면, 내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다. 나는 누가 선 넘어오는 걸 좋게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사실 친한 친구는 우리집에 왔다가 잠시 어디 갈 때 내 옷 좀 걸치고 나가고 그럴 수 있지. 이게 인과 관계를 착각하는 놈들 많이 봤다. 친하니까 나한테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그런 행동을 하니까 친한 게 아니다. 근데 시발 이걸 착각을 하는지 어쨌는지 자꾸 내 물건 건드리고 나한테 오지랍 떨고 그러는데, 난 그런 거 존나 싫어한다. 지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새끼가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훈수를 두는지.

그리고 나는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나 개인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런다. 그래서 딱딱 할 일만 하고 개인적인 건 물어보기 전까지는 안 건드리는 사람들이 편하다. 한국식으로는 사람들하고 거리는 둔다고 볼 수 있겠는데 애초에 나는 이런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미국식 문화가 물론 나도 당황스러운데, 덕분에 좀 편할 때가 많은 거지. 냉정하다 뭐 어쩐다 소리 한국에서는 많이 들었는데, 사실 이건 냉정한 게 아니라니까.

아무튼, 뭐 모든 미국 사람들이 다 저러느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경향은 분명히 있지만, 저 영상에서 나온대로 와스프계, 그러니까 잉글랜드계 미국인들한테 굉장히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나도 저거 보자마자 딱 얼굴들이 떠오르더라고. 동유럽계 미국인들은 뭐 그냥 한국인하고 비슷하다. 남미 쪽도 그렇고. 내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애들은 동유럽계, 네덜란드계 미국인들이다. 우리집에 일주일에 서너번은 오는 와이프 친구도 동유럽 출신이다. 이게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해가 안 될 때도 많고, 당혹스러울 때도 많지만 이걸 무조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속한 사회에서 뭔가의 이유로 인해서 에티켓으로 정립이 된 뭐 그런 거니까 말이다. 그냥 동아시아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가 있다 뭐 이런 정도로 여기는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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