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Life

도시에서의 눈 치우기는 나름 재밌었지

Markowitz 2025. 3. 26. 07:13

아마도 2019년이었던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눈 폭탄이 떨어졌다. 시카고 공식 기록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2011년에 있었던 블리자드와 비슷한 정도였다. 애들 daycare는 물론 회사도 문을 닫았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안심하고 쏟아져 나와 눈을 치웠지.

집집마다 커버해야 하는 side walk이 짧다보니 snow blower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신 삽을 들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 중에 나보다 삽질을 잘 하는 사람이 있기는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이번엔 side walk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 뒤로 나 있는 alleyway를 치워야 했다. 차고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차가 다니는 곳인데, 그래서 평소엔 안 치우는데, 눈이 자동차 범퍼 높이를 넘어가게 쌓여서 아예 차가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바닥이 드러나게 치우는 게 아니다. 그냥 차가 다닐 수 있을만한 높이로 눈을 덜어내는 게지. 어느 정도 치우고 있는데, 이웃들 중 하나가 차를 끌고 나왔다. 아직 충분히 치운 것 같지는 않은데 차가 눈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감수하고 나온 게지. 참으로 용감하지 않은가. 덩치 큰 사륜 구동 SUV는 이리저리 뒤뚱거리며 지나갔고, 우리들은 모두 삽질을 멈추고 운전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 때는 지금보다 눈이 자주 왔다. 게다가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눈이 많이 쌓이기 전에 치워야만 했다. 자연스레 나가서 삽질을 하는 빈도가 지금보다 비교가 안될만큼 많았다. 그만큼 눈 치우다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지.

사람이 같이 뭔가를 하면 친해지는 것 같다. 특히 육체적으로 땀을 흘리면 더 효과적이고 말이야. 그렇게 눈을 치우면서 많은 사람들과 안면도 텄고, 알던 사람들과는 더 가까워진 걸 느꼈다. 지금도 내가 눈 치울 때 빗자루질 하는 앞 집 아저씨를 보면 인사를 하지만 딱 사람 수가 앞집, 옆집 길 건넛집 딱 이렇게 셋이다보니 그날 눈폭탄을 치우면서 느꼈던 재미는 느낄 수가 없네.

사실 도시 생활이 재밌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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