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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요

시카고는 위험한 도시의 대명사다. 과거로는 ‘알 카포네’의 주 무대이기도 했고, 현재에도 피살률이나 살인사건 피해자 수 등 범죄 관련 통계라면 무엇이든지 간에 어디 꿀리지 않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시카고 남쪽 동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남부 시카고인지 남부 이라크인지 헷갈릴 정도로 절망적으로 묘사된다. 그야말로 정량적, 정성적, 역사적으로도 위험한 도시인 것이다.

 

먼저 이 지도를 보자.

2019년 시카고 총격사고, 출처: Chicago Tribune

먼저 한 해 동안 참 많은 총격사고가 있었다 싶고, 이게 서쪽과 남쪽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중심에서 약간 북쪽인 지역은 총격 사망자가 없다. 그럼 저 사고 많이 나는 동네는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지는데 시카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임과 동시에 흑인 거주지역이다.

인종 별 거주지역, 출처: bestneighborhood.org
지역별 1인당 수입, 출처: bestneighborhood.org

미국 도시들이 다들 인종별로 사는 동네가 다른데 시카고는 그 중에서도 좀 심하게 분리된 편이다. 백인이 사는 동네, 흑인이 사는 동네가 딱 정해져 있다. 거주지만 그러게 아니라 다니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백인 거주지에서는 흑인이 뜸하게 보이고, 백인 동네에 살면서 여길 벗어날 필요는 사실상 없다. 안타깝게도 흑인 거주지와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 동일하다. 괴짜사회학 이란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저 동네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기에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안전한 동네 살면서, 다운타운으로 출퇴근하고, 밤 늦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2020년 5월 말부터 일주일에 걸쳐 George Floyd란 흑인의 죽음으로 촉발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시내는 쑥대밭이 됐고, 가게란 가게는 다 털렸다. 우리 동네도 별 수 없었다. 나는 백인 거주지역 깊숙이 살고 있다 보니 피해를 본 게 없었지만, 아내가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는 약국이 약탈당하고 문을 닫은 게 조금 걱정되었다. 이 정도의 사건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당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진, 출처: Chicago Tribune

이 사태를 놓고 이건 인종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임을 지적하는 분석도 있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교육, 실업률, 결손가정 등등 저 흑인 거주지역은 어떤 지표를 갖고 와도 다 심각하다. 도대체 뭐가 진짜 문제인지를 알 수 없는 수준이다. 운전하면 2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자동차에 타고서라도 지나가지 말라는 지역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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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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