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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선거철 신고의 추억

주말에 오랜만에 한국 웹사이트들을 서핑해봤다.

때가 선거철이라 여러가지 선거 관련 뉴스들이 많네.

이런 저런 기사들을 보다보니 내가 옛날에 했던 일이 생각났다.

예나 지금이나 난 참 조용히 사는 소시민인데 지금까지 딱 두번 경찰서에 뭘 신고해봤다.

처음은 2003년 이정도인 것 같은데, 주말 아침이었다. 주중에 일하느라 지친 몸으로 잠을 자고 있는데 집 근처에서 어떤 여자가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한테 뭘 따지는 거였는데 그러면 최소한 두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거 아닌가? 한명의 여자 목소리만 쉬지 않고 들려왔다.

처음엔 좀 억울한 일이 있어서 저러나보다 하고 참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한시간이 넘도록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좀 자야 하는데... 그래서 참을 수가 없어서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어떤 여자가 계속 소리를 질러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경찰서에서는 위치를 물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집 근처에 오면 아실거에요."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네.

좀 있다가 그 여자가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세요!" 이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다시 숙면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내 작은 목소리가 우리 동네의 평안함을 찾아준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해하면서 잠을 잤다.

두번째는 선거철이었다. 아마 2008년이겠지. 그때가 국회의원 선거철이었다. 당시 나는 GRE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너무나 일이 많았기 때문에 주말 시간이 너무나 금쪽같았다. 그 시간을 놓치면 공부할 시간이 아예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동네에서 국회의원을 했던 '서상목'이란 사람이 다시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했다. 이 사람은 과거 국세청에서 세금을 빼돌려서 이회창 대선자금으로 유용한 전력이 있는 아주 지저분한 놈이다. 처음엔 한나라당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공천을 받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공천심사 자료로 쓰려고 했는지 우리집에 서상목을 공천해야 한다고 유도하는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었다. 내가 받았는데, 너무 의도가 빤히 보이고 내가 서상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놈 못쓴다는 식의 답변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난 열심히 GRE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서상목이가 유세차량을 끌고 와서는 확성기로 연설을 틀어놨다. 이 소중한 시간에 공부를 해야되는데, 이번에도 좀 참아보려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경찰서에다 또 신고했다. 조용히 좀 시키라고.

불법이라면 조치해줄 것이고 적법이면 어쩔 수 없는거고.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서상목이는 좀 있다 다른데로 옮겨갔고 난 다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데 선거라는 것이 꼭 필요한 절차이고, 후보자가 자신을 알리는 것도 동등하게 필요한 절차이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못받고 무소속으로 나온 서상목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알리는게 절실했을 것이다. 그런데말이다. 꼭 내가 선거하는데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건 필요하지만, 전혀 고려대상도 안되는 서상목이가 뿜어대는 연설은 내게 공해였다. 정말 급하게 GRE 공부를 하면서 아무나 정치해도 되는 기본 민주주의적 생각과 그래도 후보자 자격을 제한해서 공해를 막아야 하지 않나 하는 반민주주의적 발상에 대해서 잠시 고민을 하게 된 하루였다. 그래도 결론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해서 이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라는 거였다.

이 결론에 이를만큼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내가 GRE 공부가 너무 급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서상목이가 이 글을 볼 리는 없지만, 2008년 당시에 받은 신고중에 한건은 내가 한건데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니가 국회의원 같은거 되면 안된다고는 생각해. 의견이 달라도 절차는 존중해야 된다는 점에서 다음번엔 불편해도 참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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