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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기초군사훈련의 별식 군대리아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가 문득 훈련소에서 먹었던 밥이 생각났다. 뭐 내가 오늘 먹은 밥하고 아무 상관은 없다.

입소한 날에 있었던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좌절이었다. 정말 좌절스러운 기분. 이 짓을 4주만 버티면 된다는게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머릿속을 비우고 식사 시간만 기다렸다. 식사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밥 한끼 더 먹었다는게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뜻이니까. 군대 밥은 무쟈게 맛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입소한 다음날인가 군대리아가 나왔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좀 지내보니 그나마 맛있는게 군대리아더라.

그렇게 맛없는 밥이라도 먹을 때마다 식전기도를 올려야 했다. 대충 “이 식사는 우리 부모님이 내신 세금으로 만든 것으로 맛있게 먹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무념무상으로 기도만 올리던 어느날, 어느 현자가 깨달음을 들려주었다. “씨발 이거 우리가 낸 세금이기도 하잖아. 그 많은걸 어디다 쓰고 밥이 이따구로 나오는거야!” 다들 병역특례업체 다니는 직장인이다보니 각종 세금 꼬박꼬박 내고 있었던 게지.

굴리긴 딥따 굴리지, 쉬지도 못해, 먹는 것까지 시원찮으니 한번 감기라도 걸리면 도무자 낫지를 않았다. 훈련소에서 뺑이 치는게 불쌍한지, 국가에서 용돈이 조금 지급되는 모양이더라. 일주일에 몇천원 정도 되나. 그걸 일요일에 몰빵해서 과자로 받았다. 오만에서 만든 브라보라고 들어나 봤나. 별 이상한 과자가 다 있었다. 그 과자와 종교활동에서 받는 쵸코파이가 유일하게 맛난 음식이었다. 종교활동이래봐야 그냥 과자 많이 주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에 가는거더라고. 나도 쵸코파이 2개 주고 의자에 앉아서 잘 수 있다는 이유로 교회 갔다. 생각해보니 오리지날 오리온 쵸코파이도 아니고 롯데 쵸코파이였다. 참 이상한거 많이도 먹었네.

드디어 퇴소일이 다가왔다. 마지막 식사로 군대리아가 나왔다. 난 그나마 맛난거 챙겨주나보다 생각하고 잘 먹었다. 근데 처음 받았던 그 때처럼 버리는 사람이 많더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로 된 음식 먹을 수 있으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 사람들 결국 후회 했을 것 같다. 그 산골짝 훈련소에서 서울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겨우 4주짜리 훈련, “제대”도 아닌 “퇴소”하는 마당에 데리러 나온 사람도 드물던데. 누가 데리러 온 사람들이 있긴 있던데 많이 부럽더라.

그렇게 퇴소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 쯤 됐나 그랬다. 정말 시간이 안가는 훈련소. 기분상으로는 한 1년은 있었던 것 같은데, 사회로 나와보니 겨우 4주 밖에 안흘렀더라. 그 부실한 훈련소 밥 먹으며 뺑이를 쳤더니 허리 사이즈가 쑥 줄어들었던 기억이 나네.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콜라를 한잔 하고, 저녁은 중국집에서 먹었던 것 같다.

그 다음날인가, 동아리 후배들이 술먹자고 연락이 왔다. 이 멤버로 훈련소 가기 직전에도 모였었지. 그날도 내가 훈련소 간다고 모인 건 아니었다. 4주 훈련 가는 주제에 그러는 것도 웃기고. 그냥 모였는데 날짜가 그리 된거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돌아왔다고 모인 것도 아니고 그냥 친한 사람끼리 아무 의미 없는 술자리였지. 걔네들 내가 훈련 받고 온 것도 까먹고 있더라고.

나는 그동안 훈련소에만 있었으니, 총검술, 군대리아, 각개전투 같은 이야기 밖에 할 게 없었다. 나름 특이한 경험이라고 신나서 떠들었다. 그런데 후배가 짜증을 내며 “오빠는 왜 자꾸 군대 얘기만 해요!” 이러더라고. 아 지난번 만나서 지금까지 군대에 있었으니 이럴 수 밖에 없는건데 참… 4주 훈련은 이렇게 대접을 못받구나 하고 나름 서운해했던 기억이 난다.

“리누스 토발즈”는 자서전에서 국가가 우리를 억지로 군대에 끌고 가는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했다. 맥주를 곁에 두고 평생 떠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란다. 현역들은 모르겠지만 4주짜리 훈련만 받은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책에서 군대 이야기 읽을 때 그렇게 공감이 되더라고.

참 특이한 경험이었고, 참 별난 음식이었다. 뭐 근데 다시 해보고 싶다거나 남들한테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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