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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대한민국의 특수부대, 예비군

난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했다. 속한 곳에서 충실한 일원이었음은 물론이다. 기초군사훈련만 하더라도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다. 고전물리만 하던 사람이 양자역학의 세계에 발을 딛으면 이런 기분일까. 내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별세계를 본 느낌이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에 끌려가서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약과다.

멀쩡한 남자도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이상해진다지. 여러 전설처럼 전해지는 무용담들. 뭐 건너 들은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좀 과장된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다 사실이더라. 아니 그것조차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전설의 매트릭스에 약이라도 먹고 다녀온 기분이었다.

살벌하던 조교의 명령은 “선배님 거기서 주무시면 안됩니다” 따위로 바뀌어 있었다. 줄 세운다고 화내고 식사시간엔 기가 막히게 줄맞춰 서서는 빨리 안간다고 화냈다. 어디든 틈만 있으면, 비록 흙탕물이 넘실대는 땅바닥에라도, 누워서 잤다. 50m 정도 걸어가쟀더니 들려온 불평은 이 더운날에 어떻게 움직이느냐, 어제 수색하다가 쓰러진 군인 뉴스도 못봤냐, 우리도 그러다 죽으면 어쩔거냐 수준이었다. 일단 저기까지 가기만 하면 자게 해준다는 약속에 가까스로 진정된 예비군들…

예비군들의 삐딱함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운영도 좀 문제가 있더라. 예비군 훈련이라는 게 현역 때 익힌 걸 유지하려고 한다는데, 엉뚱한 걸 시키더라고. 나는 차량 수리병으로 분류되어서 조교들이 트럭 뜯어보는 거 구경하고 있었다. 나야 뭐 병특 나부랭이였으니 못알아먹을 수 밖에.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촛점 풀어진 눈을 하고 있는거다. 이상하게 느낀 조교가 “선배님들 혹시 현역 때는 뭐 하셨습니까?”라고 물어봤다. 현역 때 이거 비슷한 일 한 사람은 한명도 없더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트럭 수리하는데 보낸 것일까? 이러니 조교는 혼자 떠들고 예비군들은 다 잤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억지로 군대 끌려가서 2~3년을 보냈다. 그런데 또 불러서 쓸데없는거 시킨다. 게다가 아주 귀찮은 방향으로 말이다. 이게 딱 예비군들의 심정인 것 같다. 처음 예비군 갈 때는, 회사에 일도 많고 하니, 잠 많이 자게 해준대서 쉬는 기분으로 갔다. 그런데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산골짝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에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군복과 엑세서리는 어디 쳐박아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혹시라도 그런 것 빠뜨리거나 늦으면 가차없이 돌려보낸다고 협박한다. 게다가 내가 훈련 간다고 내 일 누가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한 순간, 이미 예비군들은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나 있는 상태인거지.


훈련 시키는 놈이나 받는 놈이나 이모양이니 훈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럴꺼면 왜 하냐. 그냥 사회에 내버려뒀으면 알아서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냈을 시간에 이러고 있는다는게 말이 안된다.


예비군 훈련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몇가지만 지켜졌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1. 예비군 훈련 기간을 줄이는게 좋겠다. 1년에 1~2일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2. 여비를 올려야 된다. 지금 주는 돈은 차비하고 밥값도 안된다.

3. 이상한 비디오 좀 틀지마라. 내가 웬만하면 끝까지 보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4. 밥 좀 제대로 된거 먹여라. 예비군들은 돌도 씹어서 소화시키는 20대 초반이 아니다. 밥시간이 되면 반갑다가도 짬밥의 처참한 퀄리티를 보면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다.


이정도만 만족시켜줘도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그렇게 짜증나는 물건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뭐 이렇게 될 일 없겠지 아마.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짜증의 끝까지 가면 다 똑같더라는 것 정도 배웠나. 뭐... 이렇게 배운 것 없는 경험도 드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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