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개고기의 미래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여름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아버지께서 와계셨다. 처음 뵙는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아들 친구가 왔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하시더니 간 곳이 동네 보신탕집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퇴근 후에 자주 이렇게 오셔서 수육과 소주를 드시는 듯 했다. 그렇게 해서 난 처음으로 개고기라는 걸 먹어보았다.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별미 같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고기지 뭐.


그 후로부터 매년 이렇게 더울 때면 보신탕을 먹으러 갔다. 그때 그 친구와 말이다. 특별히 보신탕이 맛이 있거나 영양보충이 된다거나 해서는 아니다. 그냥 여름이 오면 그 때 친구와 친구 아버지와 함께 갔던 생각이 나고 습관처럼 보신탕을 찾았다. 나름 단골집도 생기고,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집도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보신탕을 좀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각종 향신료와 함께 푹 끓여낸 맛에서 옛 기억과 푸근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동시에,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연례 행사처럼 시위를 하고 신문에 기고를 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뭐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다. 먼저 밝히자면, 개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개고기가 유망한 육류가 될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없다고 말해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는 위생이다. 개고기는 가축으로써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소나 돼지, 닭은 따라야 하는 규제가 있다. 도축 전 얼마간은 항생제를 주지 못한다거나, 병든 고기는 유통될 수 없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개는 그딴거 없다. 내가 먹은 개고기가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상품화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큰 문제다. 위생적으로 관리되는 고기와 그렇지 않은 고기가 있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선호할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만큼 사람들은 불안한 고기를 멀리할 것이다.


때문에, 한 국회의원이 개고기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기 때문에 위생문제를 그냥 놔두는게 어불성설이긴 하지. 허나 동물보호단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입안되지는 못했다. 한국이 아직은 제대로 된 토론보다는 떼쓰고 시끄럽게 하는게 더 잘 통하는 상황이다보니 뭐...


위생문제는 합법화시켜서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개고기의 미래는 어둡다고 본다. 문제는 가격일 것이다. 개고기는 사료를 고기로 바꾸는 효율이 낮다. 때문에 지금처럼 대충 키워도 개고기는 비싸게 거래된다. 만약 소나 돼지 수준의 규제를 만족시키면서 개를 키우면 비용이 훨씬 높아질 것이고, 가격도 따라서 올라가는게 당연지사. 지금도 비싼 편이긴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퇴근 후에 수육과 소주를 아들과 나눌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게 한우의 두배, 세배가 되더라도 그걸 감수하고 개고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애견가(?)를 자처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개고기가 미래에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합법화와 품종개량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 상태에서, 뭐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대를 씹어먹고, 합법화를 시키면 앞서 설명한대로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정상적인 비즈니스가 될래야 될 수가 없다. 말이야 이렇게 건조하게 하는데, 업계 종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고 절대 환영하지 않을거다.


품종개량은 더 어렵다. 합법화도 되지 않은 마당에 누가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육견 품종을 개량하는데 큰 투자를 하겠나. 오히려 시장이 이미 검증된 소나, 돼지, 닭에 투자하는게 낫지. 만약 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해야하는데, 국가가 주도해서 추진하기에는 비난의 가능성이 큰 이슈다.


가까운 미래에 저 두가지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개고기는 그냥 앞으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완전히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규모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좀 아쉽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가치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따뜻한 옛 기억이 돌아갈 수 없는 페이지로 박제되는 것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반응형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종 한국인 미국에서 직장 구하기  (0) 2016.08.25
저녁이 있는 미국 생활  (0) 2016.08.24
신입사원들을 위한 조언  (0) 2016.07.16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난다  (2) 2016.06.30
고달픈 이번 여름  (0) 201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