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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Shall we dance?

대학교 4학년 때 개봉된 이 일본 영화는 지금까지도 내가 극장에서 두 번 본 유일한 영화로 남아 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사회 생활이라고는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인턴 한 달 한 게 다였다. 그나마도 아저씨들 술친구 노릇이나 했지 일을 한 것도 아니라서 직장 생활을 제대로 맛봤다고는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삶이 어떠한 지 평생 보아왔지만 그 무게까지 내가 오롯이 알 수는 없었다. 이런 나에게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묘한 압박감,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그런 압박감을 나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나 싶다.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훌륭한 이야기였는지, 헐리웃에서 리메이크를 했다. 원작의 주인공 배우들이 각각 일본의 국민배우와 현직 발레리나였던 점을 보면, 리메이크판의 주인공도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패즈’로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그런데 결과물이 이건 뭐…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볼만했을까? 장면 장면마다 원작과 비교가 되는 나로서는 끝까지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저 어쩌다 본 후진 영화로 내 기억에서 사라질 뻔했는데, 내가 리메이크판의 배경인 시카고로 오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나더라. 여기서 제법 살았으니까 영화가 새롭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봤다. 그런데 여전히 별로더라. 익숙한 도시의 모습과 주인공이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처럼 나온 게 조금 반가웠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나온 주인공의 집은 또 전혀 다른 동네여서 약간 당황스럽더라. 그래도 얻은 게 있긴 했는데, 이 영화가 왜 그리 별로였는지 조금은 더 이해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묘한 ‘압박감’이었다. 젊은이들이 가득 찬 바에서 아들과 함께 술도 한 잔씩 할 줄 아는 이 여유 있는, 게다가 성공하기까지 한, 변호사로 그 압박감을 표현해 내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그런 사람이 사교댄스를 배우는 게 무슨 대단한 일탈이겠는가? 여기서는 춤이 별난 취미도 아닌데 말이다. 숨 돌릴 곳 없이 살아온 중년 아저씨가 사교댄스라는 탈출구를 찾았을 때의 카타르시스도, 이 취미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하는 조바심도 이 미국 시카고의 쿨 한 변호사 양반에게 이식되기란 불가능했다.

다른 거슬리는 점도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원작보다 너무 멋지게 만든 게 패착이었다. 찌질해야 할 캐릭터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 대사만 치고 있었고. 제니퍼 로패즈도 쓸데없이 섹시했다. 감독이 원작의 인물들이 가진 상처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든 영화 같지가 않았다. 아니 이해했다 하더라도 시카고 다운타운의 로펌을 배경으로는 구현되기 어렵다. 그러니 주제의식은 얕아지고 화려하게만 만드는, 헐리웃에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하는 전형적인, 길로 빠지지 않았나 싶다.

그럼 이 두 영화의 운명을 쥐고 흔든 그 압박감은 어디서 왔을까? 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반 정도는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명실상부한 강대국이긴 하지만, 굴곡이 있는 현대사를 가진 데다 개인들 간에 경쟁도 심한 곳이다. 이런 면에서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내게 인상적으로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 미국을 보자.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전 세계 생산의 반 가까이를 책임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의 출현이었다. 이후로 다른 나라들도 발전하면서 이 비중은 줄었지만 미국은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으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별 굴곡도 없었다.

 

미국과 일본의 Nominal GDP (trillion $) 변화 비교, 출처: World Bank

현재 미국에 살아있는 사람들 중, 미국이 제 1의 부국이 아니던 시절을 살아본 사람 자체가 없다. 이미 최강대국이 된 나라가 성장을 멈추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럴진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살 이유가 뭐가 있을까? 여기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사는 게 너무 당연하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던 친구가 어학연수를 이유로 회사를 관뒀다. 그 때 직장 동료들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Revolutionary Road에서 디카프리오가 파리에 간다고 했을 때 동료들 표정하고 똑같더라.”

이 녀석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황당하고, 본인들도 손에 쥔 걸 놓지 못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막상 그러고 있는 이 친구가 잘 될 것 같지도 않은 데서 느끼는 안도감이랄까? 여기다 오지랖 떠는 사람들 좀 있었다고 하니 그 분위기가 쉽게 짐작이 된다.

여기서는 더한 객기를 부리는 사람도 많이 봤다. 지금 쉼표 좀 찍는다고 인생에 있어서 큰 손해를 볼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더라.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에라이 미친놈아’ 하고 농담은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는 제법 온도 차가 있다. 회사를 관두는 이유가 투자은행으로의 이직이든 무작정 남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든지 새로운 도전을 축하해주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뿐이다. 다들 잘 훈련된 인재들이니, 어딜 가더라도 기회를 만나고 잘 해낼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들도, 나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미국에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객기, 다른 말로는 도전을 가능케 하는 이 곳에서라면 나도 인생을 좀 다르게 살았을 것 같다. 이미 한국에서의 삶과 꽤나 다르게 살고 있으니까 다행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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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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