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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What you pay is what you get

유사품으로는 ‘공짜 점심은 없다.’가 있다. 뉴턴의 운동법칙이 이 세상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 방식을 정의한다면, 이건 미국 사회의 물리 법칙과 다름없다. 원하는 게 있다고? 그럼 돈을 내라.

한국과 비교해서 이 물리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주택에 부과되는 재산세인 것 같다. 쿡 카운티에서 재산세를 매기는 업무를 하시는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눠본 바로는, 주택의 시세와 재산세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재산세는 그 주택이 있는 동네에 세금이 얼마나 투자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매겨진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교, 근린공원, 대중교통, 도로, 치안 등등 국가가 운영하는 것들이 많다. 즉, 국가가 세금을 써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니, 이를 누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대가를 지불하라는 거다.

호숫가를 끼고 있는 잘 관리되는 공원, 다운타운까지 30분 안에 출퇴근 가능, 좋은 학군, 여러 개의 버스 노선과 기차역을 끼고 있으며 고속도로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아야 하고, 거기다 눈 오면 제설차도 재깍재깍 오는 동네에 살고 싶다면, 상당한 금액을 세금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입지와 집값은 어느 정도 비례하기 때문에, 시카고와 근교지역을 보면 대충 집값의 2% 언저리를 재산세로 낸다. 한국 돈으로 10억원짜리 주택을 갖고 있다면 매년 이천만 원씩 세금을 내야 하는 거다. 앞서 말한 조건을 모두 갖춘 동네의 주택 가격은 이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어지간히 돈을 잘 벌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세금 청구서가 매년 날아온다. 원칙은 간단하다. 좋은 입지를 누리고 싶다면 돈을 내라.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학군이 필요 없다. 은퇴를 해서 출퇴근을 안 하게 되면 대중교통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러면 이 둘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세금이 싼 곳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이 흔하다. 세금 때문에 이사를 하다니 이게 무슨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백성인가 싶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그냥 본인의 필요를 따라 갈 뿐인 거다. 보통 집도 좀 줄여서 가는데, 이걸 다운사이징이라고 한다.

한국을 돌아보면 제법 온도 차가 느껴진다. 단순히 집의 평수만 갖고 재산세를 매기던 시절이 불과 2000년대 초반이다. 그러다 약간씩 입지나 시세를 반영하는 쪽으로 움직이긴 했다. 그런데 부동산의 입지가 구독료를 내고 누리는 거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재산세는 시작일 뿐이다. 의료보험, 유치원비 등등, 한국에서는 국가의 손길이 묻어나던 것들이, 아니 그런 줄도 몰랐던 것이, 여기서는 그냥 시장에 덜컥 맡겨져 있는 걸 많이 본다. 그리고, 아주 당연한 듯이,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가격이 매겨져 있다. 처음엔 이런 게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짜증도 좀 나고 말이야. 그러나 내가 아무리 한국 생각을 하며 미국을 원망해봐야 소용이 없다. 내가 미국에 맞춰야지 미국이 내 입맛에 맞춰줄 리는 없으니까. 나도 이 곳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여러 일을 겪고 나서야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룰, what you pay is what you get, 바로 이 법칙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도 내가 그렇게 공짜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면도 많이 보게 됐다.

각 나라마다 가용한 자원이 다르고, 다른 역사와 사회적 합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방식을 한국에 적용하는 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냥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거다. 미국 사회가 돌아가는 룰이 그런 거니 이를 통해 대충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장이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분배하니 수요/공급이 왜곡되는 일은 좀 드물겠고, 국가의 지원 같은 건 없으므로,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 좀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내가 여기서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다.

필자도 중2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의 난 무엇이든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고자 안달복달했다. 만화책도 내가 고른 것이 가장 재미있어야 하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도 최고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보게 되었고 그 주제가 가사를 읽어봤다. 난 이 가사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당신이 틀렸음을 배워간다.”

변하는 건 그렇다 치고, 내가 틀렸다는 게 무슨 좋은 거라며 저기 넣어 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한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다행인 것이, 난 그 시절을 지나왔다. 난 다른 사람의 방식도 유효하며, 남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제서야 이 가사가 이해되었다.

인간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흔히 여행 많이 다니고 사람 많이 만나면 견문이 넓어진다고들 하지. 그래서 관심도 없던 유명 관광지에 가서 증명 사진을 찍고, 선배들 술자리에 출석하며 온갖 안주를 섭렵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배운 것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날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방식을 진정으로 이해했을 때 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인격적으로도 성장하는 것 같다.

내 이 지론대로, 난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새로운 문화권에 와서 아등바등하는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도 무언가 얻는 게 있었을 것이고 성장을 했겠지만, 내 아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부디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영양가 있는 간접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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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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