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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주치의

먼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게 있다. 미국에는 수많은 의료보험이 있고, 각각 제공되는 서비스가 다르다. 나는 내가 쓰고 있는 보험 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 글에서 커버되지 않는 영역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 것이다.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는 회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보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중에서도 비용과 서비스의 범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 경험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못 봤다.

내가 갖고 있는 보험은 Blue Cross Blue Shield라는 보험사의 PPO라고 하는 것이다. 일년에 한 번 무료 건강검진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주치의를 정해두고 일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주치의를 정하기 전에 이 보험을 받아주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보험은 대충 안 받아주는 데가 없다. 이 주치의를 여기서는 Primary Care Doctor라고 부른다. 어지간한 일이 있으면 다 이 의사를 찾아간다.

대부분의 이슈는 주치의에서 끝난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주치의가 환자를 전문의에게 보낸다. 한국에서는 환자가 직접 정형외과 전문의도 찾아가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도 찾아가지만, 여기서는 반드시 주치의를 거쳐야 한다. 그냥 혼자서 찾아가면 전문의가 예약을 받아줄 지 알 수 없고, 보험사에서 비용도 커버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치과를 이용하는 방식도 같다. 치과 주치의가 있고, 신경치료를 받거나 사랑니를 뽑거나 하면 전문의에게 인도된다.

이 주치의 제도는, 한국에는 없는 것이기도 하고,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주치의가 내 모든 의료 관련 이력을 다 알고 있다는 건 장점인 것 같다. 환자의 이력은 현재 상태를 살피는데 도움도 될 테니까. 게다가 내 몸 상태를 종합적으로 봐주는 것도 편리한 점이다. 한국에서는 무좀 생기면 피부과, 팔꿈치가 아프면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야 했는데, 여기서는 일단 이 주치의에게 가면 다 해결된다. 상태가 심각하면 전문의를 봐야 하는데, 이 주치의가 알아서 추천해준다. 특히 나처럼 시카고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외국인이라면 이게 무시 못할 장점이다. 그리고 주치의가 한 번 걸러 주기 때문에 과잉 의료를 막는 장점도 있다.

허나,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일단 느리다. 주치의도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다. 오늘 내일 안으로 예약이 되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 따라야 한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은 기다린다. 전문의까지 만나야 하는 경우라면, 의사 얼굴 보는 데만 2주 걸린다. 만약 다른 의사를 한 번 더 만나야 된다면 여기서 또 일주일 추가다. 이러니 미국 사람들이 진통제를 달고 사는 것 같다. 의사를 보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아프면 삶의 질 자체가 낮아진다. 다음 문제는 비용이다. 전문의를 만나야 할 게 뻔한 상황에서도 주치의를 거쳐가야 한다. 의사를 한 번 더 만나는 거니, 그만큼 괜한 비용이 드는 게지. 별거 안 해도 $50-$100씩 드는데, 이게 싼 것도 아니고 말이야.

여기까지 보면 한국 사람들이 미국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불평하는 이유가 훤히 보인다. 우리는 이미 전문의에게 가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갖고 있다. 비염 때문에 고생이라면, 이비인후과에 가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걸 모두 안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주치의에게 찾아가야 된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제법 있다. 주치의 두 번쯤 만나고 전문의에게 보내지는데 이러면서 벌써 3주는 흘러버린다. 한국에서라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전문의 만나서 해결되었을 일을 여기서는 몇 주 동안이나 추가로 고생하고, 돈도 더 들고 말이지. 특히 주치의한테는 진짜 괜한 돈 쓴 것 같고. 나도 여기에는 100%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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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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