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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BTS에 대한 기억 몇 가지

4-5년 전 일인 것 같다. Adler 천문대에 갈랬더니 street parking은 다 금지. 거기다 Museum Campus의 주차장은 평소보다 2배인 50불을 주차비로 받고 있더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천문대는 가지 않고, 대신 차이나 타운에 있는 뚜레쥬르에 갔지. 뭐 좀 흐름이 이상하긴 한데 진짜 이렇게 했다.

헌데 한산해야 할 오전의 차이나 타운이 꽤 북적거리고 있더라. 다들 보니까 좀 비슷한 티셔츠를 입고 있대. 뚜레쥬르에 들어갔더니 뭐 그냥 미어 터져나가더라고. 서론이 길었다. BTS라는 한국 그룹이 Soldier Field에서 콘서트를 하고 있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BTS를 보러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 앞에는 Detroit에서 온 어느 백인 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BTS가 얼마나 대단한지 열변을 토하더라. 나한테 말이다. 한국 사람인 나한테. 정작 난 BTS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 내게도 이건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느낌이 왔다. Soldier Field는 그 얼마 전 Taylor Swift가 콘서트를 했던 곳이다. 어지간한 스타가 아니라면 채우기 힘든 대형 공연장인데 여기에 한국 가수가 콘서트를 한다니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또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환대를 해주는 백인은 처음 봤다. 단지 BTS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다니. 내가 BTS를 모른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중국 애들은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깝게 대하는 애들은 좀 봤다. 어떤 아는 사람은 지금이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사람 대접을 받는 유일한 시대라고 했었지. 근데 아시아를 벗어난 문화권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이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대학교에서 애들 가르치고 있다. 어쩌다가 동네의 어느 중학생 여자 아이를 태워주게 됐단다. 잘 아는 아이도 아니고 해서 분위기는 아주 서먹했단다. 어른인 나도 어색한데 내 차를 얻어타는 이 아이는 얼마나 뻘쭘하겠나 싶어서 BTS 노래를 틀어줬다네. 그랬더니 걔가 글쎄 눈을 반짝이며 “교수님 BTS 좋아하세요?” 하면서 일거에 공기가 풀어지더란다.

이거 완전 BTS로 인종과 세대의 벽을 허문 것 아니냐. 이럴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는지 난 생각도 안 난다. 역시 문화의 힘이란 대단하고, BTS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도 아직 난 BTS 노래가 뭔지 모른다. 판도라로 한국 노래를 듣는데, 마누라 말로는 난 남자 목소리만 나오면 다음 곡으로 넘긴다네. 그런 곡들 중에 아마 있었겠지.

강남 스타일이 미국에서 히트를 친 것도 대단한 사건이긴 했다. 허나 이건 웃겨서 뜬 거지. 뭐 사람들이 좋아할만큼 웃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가장 메이저라면 아무래도 ‘선망의 대상’으로써 팔리는 거겠지. 이 메이저 중의 메이저 시장은 뚫지 못하고 니치 마켓에 좀 머물렀다는 평가가 ‘강남 스타일’에 어울리지 싶다. 그런데 BTS는 이 시장도 뚫었다. 멋지고 좋아서 팔리는 거더라. 참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0년 전 유럽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새는 완전 사정이 다르다. BTS가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본다.

여담으로 이탈리아 어느 호텔에서 리셉션 아가씨가 이런 얘길 해줬다. 자기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점수가 모자랐는지 대학에서 중국어 전공으로 배정해버리더란다. 속으로는 중국어가 더 쓸모 있지 않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안했다. 프랑스 처음 갔을 때 어느 우체국에서는 나한테 대뜸 “일본으로 보내실 건가요? 아니면 중국으로 보내실 건가요?” 이렇게 물어보던데 참 상전벽해구만. 참고로 그 때 엽서는 미국과 한국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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