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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피아노를 매일 연습 해야지

원래 계획으로는 첫째에게 바이올린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야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니까. 그게 되면 소위 스펙 관리도 되면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으니까 많이들 추천을 하더라. 애가 1학년이 되면서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마누라가 어쩌다 근처 한국 아줌마를 알게 됐는데, 그 집에도 나이가 비슷한 애들이 있다. 그 집에서 애들 피아노를 시킨다고 같이 하자고 한 모양이더라. 그 바람에 우리 애가 바이올린 대신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취미를 가지기엔 피아노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현실적인 걸 따져보면 바이올린이 way to go인데... 참 엉뚱한 이유로 계획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인생이란 게 이런 거지 뭐.

선생님은 일리노이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신 분이라서 딱히 아는 사람도 많이 없어 보였다. 근처 피아노 학원에서 저 아줌마를 알게 된 모양인데 이 애들 말곤 얼마나 개인 레슨을 봐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참으로 다이나믹한 것이, 그 아줌마하고 우리 마누라가 싸워서 그 집 애들은 다 빠지고 우리 애만 우리 집에서 레슨을 받게 되었다. 어이구 이 마누라가 진짜. 잘못은 우리 마누라가 했는데 피아노를 못 배우게 된 그 집 애들한테 미안하다.

피아노도 샀고, 이왕 레슨을 받고는 있고 해서 딱히 대단한 계기가 없다면 그냥 피아노를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첫째는 왜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피아노를 안 하는데 나만 하냐고 불평을 했다. 사실 이런 이유로 많이들 관둔단다. 근데 이 불평거리가 예기치 않게 해소되었으니, 우리 애 친구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 연락처를 물어 온 것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2분 거리다. 얘네들은 이제 같은 날 레슨 받게 생겼다. 이러니까 진짜 그 불평을 안 하대. 벌써부터 친구들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하네.

어차피 피아노는 하나 살 생각이긴 했다. 내가 칠라고. 너무 정신적으로 지쳐 있어서 나를 위해 하는 게 좀 있어야겠다 싶었다. 나는 정말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 연습도 보통 이상으로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진 못했다. 아무래도 음악적 재능이 떨어지는 건 확실하고 환경도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다. 뭐 우리 시절이 다들 좀 억압적인 면이 있었지. 예를 들면 내가 대중가요를 연주하면 어머니께서는 바로 눈에 쌍심지를 키고 호통을 내렸다. 내가 치도록 허락이 된 건 오직 연습곡과 찬송가… 피아노를 배우는 내내 내가 원하는 곡을 즐겁게 연습해본다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뭐 이렇다 해도, 난 나름대로의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원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내 탓이지 뭐. 비슷하게 시작한 다른 친구들하고 비교를 해봐도 좀 못 했고.

나이를 먹고 나서, 집에서도 독립을 했고, 나는 야마하 휴대용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다시 레슨을 받았지. 목표는 쇼팽 에튀드. 솔직히 나이 먹고 배워서 칠 수 있는 곡은 아니다. 그냥 내 고집이었다. 선생님은 당황해 했지만 어찌 그래도 두 곡은 비슷하게 칠 수 있게 됐다. 그러다가 유학 준비를 하고 미국에 왔다. 빠듯한 유학생 살림에 피아노는 못 사고, 사도 그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는 통에 들고 다니기 버거우니, 대신 중고 기타를 샀는데 그것도 마누라가 팔아 치웠다.

나는 이제 40대 가장이 됐다. 인정하긴 싫지만 꿈 같은 거 꾸면 큰 일 나는 나이인 것 같다. 쇼팽 에튀드는 포기하고, 리스트 에튀드도 포기하고, 베토벤 소나타도 힘들지 싶다. 이런 건 가끔 CSO 가서 듣는 걸로 대리만족 해야지. 난 그냥 예전에 즐겨 듣던 뉴에이지 피아노 곡이나 쳐볼란다. 하루에 30분 씩 하면 한 달에 한 곡 정도는 어째 비슷하게 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뭐 두 달 걸려도 되고. 원하는 곡을 완성해가는 즐거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야. 그만한 재미를 다른 데서 찾기가 어디 쉽나. 오늘부터 캐논 변주곡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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