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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피아노가 안 쳐진다

피아노를 손에서 놓은지 어언 15년. 이 쯤 되면 다시 피아노를 치겠다는 맹랑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피아노 실력이 아주 그냥 뭐… 많이 줄었다. 쉽게 생각했던 캐논 변주곡이 안 쳐진다. 첫 페이지 치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 미처 몰랐다. 이제 음표가 훨씬 많은 뒷 페이지부터는 오른손 왼손 따로 연습해야겠다. 이 속도로는 한 달은 커녕 두 달도 어림 없다. 2008년에 치던 곡보다는 이게 훨씬 쉬운데 진도가 이모양이니 진짜 뭐 당혹스럽네.

난 뉴에이지 곡을 별로 쳐보지 않았다. 쉬워 보여서 그랬다. 캐논 변주곡만 해도 음표가 특출나게 많은 것도 아니고, 빠른 것도 아니고, 손이 클 필요도 없다. 게다가 다 장조 아닌가. 난 피아노 실력을 정말 늘이고 싶었다. 선생님에게도 피아노를 즐기기보다는 실력을 높이기 위한 곡을 가르쳐달라고 해왔다. 쇼팽 에튀드 하나 치고 나면 실력이 눈에 띄게 는다는데 이런 걸 배우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듣는 걸로는 나도 좋아했다. 정말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막상 쳐맞아보니 이거 원… 이런 속도로 진도가 나간다는 건, 내 실력에 너무 어려운 곡이란 건데, 아 진짜 이게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네. 계속 이거라도 붙들고 있다보면 그나마 실력이 나아질까? 아니면 다시 레슨을 받으며 내 상태에서 실력을 올리기 위한 곡을 연습해야할까. 난 진짜 모르겠다. 이 산이 아니라면 빨리 접고 내려가는 게 현명한 선택일텐데…

심정적으로 이 걸 포기하는 게 잘 안 된다. 그냥 제대로 죽이 될 때까지는 이걸 붙들고 있어봐야겠다. 진짜 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는 세계네.

애들 교육에 있어서 제일 안 좋은 게, 부모가 거실에서 놀면서 애한테 “니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라.”라고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애가 책 많이 보면 똑똑해진다고 해서 책 읽히니 어쩌니 하는데, 부모는 책 한 자도 안 보면서 애한테만 지랄하는 것처럼 허무한 게 없다. 마찬가지로 피아노도 애한테만 일방적으로 연습해라 어쩌라 하면 뭐 애가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아빠가 안되는 거 꾸역꾸역 연습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걸 보여주면 애한테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제부터 알아가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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