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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조금 묵은 영화를 보는 재미

데미안 샤젤 감독의 ‘위플래시’를 봤다. Netflix에 있더라. 이 감독은 꾸준히 꿈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데, 이룬 꿈이든, 좌절된 꿈이든, 나한테 많이 와 닿아서 언젠가는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여기 주연 배우가 마일스 텔러네. 완전 뽀송뽀송한 새내기 대학생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또 반가운 얼굴 멜리사 베노이스트가 있더라. 비중이 크진 않은데, 진짜 알바 하는 예쁜 대학생 역으로 너무나 딱이다. 이렇게 옛날 영화를 보면 유명 배우의 무명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이 가끔씩 보인다. 지금에야 이 사람들이 이런 역을 맡을 리는 없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점도 있고. 위플래시 예산이 330만 달러인데, 이 걸로는 저 배우들 하나도 못 쓴다.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다른 역을 맡은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나도 늙어간다는 뜻인데… 나는 그 시절과 지금 어떤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만큼 성숙해지고는 있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도 잘 봤다. 저 여배우 얼굴이 아무리 싱그러웠기로서, 뭐 참 풋풋하다 그러면서 나도 저 나이 때는 뭘 했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건 사실인데, 나는 배우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다. 이 영화는 꿈을 향한 광기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어하지. 그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도 만나고 싶지. 대충 잘하게 되는 법은 다 안다. 음악이라면 연습 많이 하고 뭐 그런 건데, 정말 높은 수준으로 가고 싶으면 당장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애매해진다. 그냥 지금 곡을 연습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곡으로 가야 하는가? 연습 방법은 이게 나은가? 아니면 저게 나은가? 애매한 것들 투성이다. 정답은 없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광기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영화는 거기에 대한 이야기다.

앤드류 니먼, 그냥 그는 순수하게 꿈이 크고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너무나 높은,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에게는 길을 인도해줄 스승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하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플레쳐다. 그에 의해서 니먼은 변해간다. 니먼은 처음엔 그냥 뭐랄까. 멀쩡했다. 플레쳐의 방식은 멀쩡한 니먼이 받아들일 수 없었지.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반쯤 미쳐 있는 플레쳐에게 똑 같이 미친 방식으로 맞선다. 그런 그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플레쳐… 이 둘의 긴장이 아주 완성도 높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는 있다.

남다른 성취를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헌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칠 필요는 없다. 허나 미친 놈과 멀쩡한 놈을 가르는 clear cut은 어디인가? 사실 이게 애매한 게 사실이다. 나도 답은 모른다. 하지만 몇 가지 기준은 갖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그 헌신이 행복한가? 플레쳐에 조련당하는 니먼은 아무리 봐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플레쳐에게 한 방 먹이는 니먼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내버리고는 뭘 하겠단 말인가? 이러다가는 본인이 얘기했던 찰리 파커처럼 요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다 플레쳐도 행복해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멈추는 순간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게 되기에 달릴 수 밖에 없는 폭주기관차 같은 인생. 그냥 그 뿐이다.

공부 안 하려는 애한테 공부 시키면 안 하려고 하지. 공부 하기 싫어서 죽겠는 아이는 갈궈봐야 점수 몇 점 올리는 건 가능해도 최상위권으로 만드는 건 안 된다. 뭐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건 괴로워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과정이 대체로 행복하다고 느껴야, 거기서 무슨 보람이라도 찾아야 반에서 1등이라도 될 수 있다. 하물며 그 이상을 바라면서 어떻게 행복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나.

여자 친구에게 결별을 통보하는 장면에서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저렇게 예쁘고 착한 여자 친구를 사귈 기회는 아무한테나 오는 게 아니야 멍청아. 저걸 차버리다니 진짜 돌긴 돌았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인데, 그보다 일상의 행복을 내려놓는 길로 가는 걸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20대 초반의 연애에서 느끼는 풍부한 감정은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경험이고 그걸 통해서 예술가로써, 혹은 하나의 인간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걸 마다하고 어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큰 도약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이 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니먼은 그런 면에서 불운했다. 나도 내 자신을 돌아봤다.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잘못된 만남이 여럿 떠올랐다. 플레쳐는 그래도 실력이라도 있었지 그 새끼들은… 쓰레기 사기꾼들이지. 그 중엔 진짜 경제사범 됐으니까 사기꾼인 새끼 있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된 이끌림을 받기도 하고, 때론 운이 없기도 하지. 내 자식들은 가능한 한 그들의 포텐션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내가 현명해야겠지. 플레쳐 같은 인간이면 안되겠지. 지 딴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애만 잡는 부모가 수두룩 하잖아. 어느 교수가 내 친구에게 해준 말이 있지. 무식한 엄마가 애 사랑한다고 잘 키우는 거 아니라고.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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