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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유학가기 전 연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학을 가거나 결심하는 시기가 20대다보니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한다.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역특례가 끝나던 시기에 난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여자친구가 있었다. 난 항상 공부를 더 하고 싶어했고, 사정이 좀 있어서 국내 대학원보다는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유학을 가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만한 의지가 있다는 것 모두 연애 초기부터 밝혀놓은 바였다. 처음에야 뭐 나중일인데 이러면서 넘겼지만, 점점 구체적으로 내가 준비를 시작하자 나중 일이 아닌 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여자친구가 스스로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직장을 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지금 문제가 되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좁은 지식 안에서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친구들이 생기다보니 사람들의 다른 점만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직장생활을 하고 비슷비슷한 친구들의 이너서클을 벗어나보니 그래도 사람은 비슷하더라.

그때도 지금처럼 신문에서는, 사실상 그 반대에 가까웠지만,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니 어쩌니 떠들어댔다. 이런 마당에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면 사람은 그걸 잃을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리고 뭔가 가진 사람은 자기와 비교해 조금이라도 덜 가졌거나 덜 가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해지기 마련이다. 여자친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직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되는 양 생각했을 것이고, 내가 가려는 유학은 우매한 돈지랄로 보였겠지. 결국 나한테 대해서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았던 거다.

급기야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나게 됐고, 난 거기서 "유학 생각하고 있으면 당장 헤어지라."라고 통보받았다. 더군다나 초면에 그런 소리를 단도직입적으로 들었다는게 충격이었다. 내 꿈이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유학 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러느라 좋은 직장 포기하고 딸이 외국 나가서 고생하거나 떨어져서 지내는 것은 안된다는 거였지. 곱게 키운 딸 고생시키기 싫다는 게 부모 마음이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유학 간다는게 뭐 그리 대단한 리스크였냐는거다. 내가 당시에 공부하려던 것은 Computer Science였다. 무슨 돈 안되고 취직 안되는 전공도 아니고 지금도 참 괜찮은 분야인데 저런 소리를 들었다는 게 이해가 안됐고 참 괴로웠다. 석사를 한다면 단지 1~2년일 뿐인데.

때마침 괜찮은 잡오퍼도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망년회에서 만난 대학친구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길래 힘없이 "차라리 그 회사로 들어갈까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난 유학 대신 그 회사로 조인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난 이 결정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이 의사결정이 내게는 실리를 포기한 것이지만,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실리를 얻은 것이었다. 근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헤어지자"는 협박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 협박을 통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이 통한다는 것을 한번 확인했으므로 자꾸만 그런 일이 생겼고, 점점 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놓고 협박을 받을 때마다 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포기하면서 요구를 맞춰줬다. 그러던 중에 난 문득 알았다. 이 사람은 내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 가치있어 보이는 조건을 걸고 뭔가를, 특히 내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은 장사지 신뢰관계가 아니다. 그러자 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도 보였다. 그 사람은 "나"라는 리소스를 옆에 두고 원하는 것을 계속 얻어내길 바랬을 뿐이다. "난 니 욕심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태연히 "욕심 좀 채워주는게 뭐 어떠냐"라고 말하길래 곧장 끝냈다.

그런 여자 때문에 내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을 미스했다는게 참 한심했다. 하지만 나름 valuable lesson이었다. 아무리 겉보기 멀쩡하더라도 인간관계에서 중요한게 뭔지, 그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그 때의 여자친구는 누가 유학과 연애를 놓고 갈등한다는 말을 들을 때 밖에는 생각도 안난다. 어쩌다 생각이 나면, 분명히 좋은 추억도 많았을텐데, Resident Evil에서 순진한 눈망울로 "I don't deal on chance."라고 말하던 슈퍼컴퓨터 홀로그램이 먼저 생각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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