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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방인

체력은 국력 대학교 시절 막 부임하신 교수님께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을 질문했다. “미국 애들은 운동을 많이 해서 체력이 진짜 좋다. 밤을 새도 한 시간만 쪽 잠 자고 나면 다시 회복되는 것 같더라. 그런 애들과 경쟁하느라 힘들었다.” 너무 우수한 학생들을 만났다 거나, 외로움 혹은 중압감 같은 게 아니라 체력이라니. 내 예상을 벗어났지만 설득력 있는 대답이었다. 무릇 정신력조차도 체력이 있어야 나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들은 말도 있고 나도 몸이 아파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을 달린다든가, 짐에 출입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다가 미국에 온 게다. 내가 미국 애들이 밤샘하고 나서 회복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한다는 건 확인.. 더보기
What you pay is what you get 유사품으로는 ‘공짜 점심은 없다.’가 있다. 뉴턴의 운동법칙이 이 세상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 방식을 정의한다면, 이건 미국 사회의 물리 법칙과 다름없다. 원하는 게 있다고? 그럼 돈을 내라. 한국과 비교해서 이 물리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주택에 부과되는 재산세인 것 같다. 쿡 카운티에서 재산세를 매기는 업무를 하시는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눠본 바로는, 주택의 시세와 재산세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재산세는 그 주택이 있는 동네에 세금이 얼마나 투자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매겨진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교, 근린공원, 대중교통, 도로, 치안 등등 국가가 운영하는 것들이 많다. 즉, 국가가 세금을 써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니, 이를 누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대가를.. 더보기
Shall we dance? 대학교 4학년 때 개봉된 이 일본 영화는 지금까지도 내가 극장에서 두 번 본 유일한 영화로 남아 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사회 생활이라고는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인턴 한 달 한 게 다였다. 그나마도 아저씨들 술친구 노릇이나 했지 일을 한 것도 아니라서 직장 생활을 제대로 맛봤다고는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삶이 어떠한 지 평생 보아왔지만 그 무게까지 내가 오롯이 알 수는 없었다. 이런 나에게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묘한 압박감,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그런 압박감을 나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나 싶다.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훌륭한 이야기였는지, 헐리웃에서 리메이크를 했다. 원작의 주인공 배우들이 각각 일본의 국민배우와 현직 발레리나였던 점을 보면, 리메.. 더보기
양날의 검, 한국인 커뮤니티 지금이야 내 앞에 있는 친구가 한국에서 왔건 몰도바에서 왔건 다 똑같다. 허나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한 사람은 한국인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영어가 불편하고 현지 사정에도 어두울 테니까. 이 때 만나는 한국인들은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루저 되는 급행열차일 수도 있다. 물론, 인간 관계에 대해 참견하는 건 좀 주제넘은 소리다. 사람들이 미국에, 혹은 이 도시에 모이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내가 모든 사람들 다 이해하고 있을 리도 없고, 만난 한인들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결국 내 경험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미국에 자기 힘으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길 바란다. 먼저 아름다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한국에서 학부나 석사를 졸업하고 해외유학을 .. 더보기
이렇게 교포가 되어간다 2018년 어느 날, 고향친구가 내게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름을 대보라고 하더라. “손민한, 조정훈, 카브레라…” 내 입에서 나온 건 2000년대 중 후반 선수들 이름이었고, 당시에도 뛰던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놀랍게도 2018년 롯데 투수들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송승준’ 하나 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의 롯데 자이언츠는 2009년에 멈춰 있었던 게다. 사실을 말하자면, 프로야구팀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한국은 2009년의 모습이다. 그 후에 있었던 변화는 별로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다. 한국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거기서 성장했고,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친한 친구들, 친지들 대부분 그곳에 있다. 하지만, 점점 한국에 관심이 없어진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내 아이디는 이미 다 휴면계정이 되었다. 이.. 더보기
관대한 기부 문화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가게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아무리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Stay-at-home 명령이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North Pond’라는 레스토랑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시다시피, North Pond는 3월 15일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시로부터 다음 지침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린 모든 직원을 해고했고,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략)… 많은 고객분들께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관심과 아량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에 우리 직원들을 위한 모금을 요청 드립니다. 레스토랑을 다시 열 수 있게 되면 기부해주신 분들을 재개장 파티에 초대하겠습니다. ….. 더보기
박물관에 자주 가는 이유 한국에서 공립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건축물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거라!” 아마 이게 그 시설이 지어진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건물에서 웅장한 느낌이 들고, 건물로 들어가는 길도 웅장하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한번 갔다가 다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가장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생활 밀착형 시설 같다는 느낌은 역시 안 든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조금 다르다. 과시하는 느낌이 드는 곳은 많아도, 루브르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입구에 들어가기까지 관람객들을 대놓고 고생시키는 곳은 못 봤다. 전시물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대영박물관조차 대장정 같은 건 없이 들어갈 수 있고, 입구를 통과하자 마.. 더보기
Chicago Public Library로 엿본 미국 한국에 살면서 공공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던가? 어디 보자. 국회 도서관 몇 번 갔고. 학교 다닐 때는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지. 그 외의 도서관에는 가본 적이 없다. 가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 퇴근 시간이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을 아득하게 넘어갔으니 말이지. 더군다나 회사 다닐 때는 내가 사는 곳 근처에 공공 도서관도 없었다. 국회 도서관은 좀 특수하니까, 내가 한국의 공공 도서관이 어떻게 돼 있는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Chicago Public Library는 정말 훌륭하다. 유학 시절에도 이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고, 아이가 생긴 지금도 매주 간다. 먼저 좋은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 동네의 조그만 도서관조차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 사회에서 교양을 갖춘 사람이 .. 더보기
안경과 술의 등가교환? 이쯤에서 사투리 때문에 싸운 에피소드 하나 덧붙이는게 나쁜 생각 같지는 않다. 어느 해 여름 늦은 시간, 친구와 둘이서 술과 안주거리를 잔뜩 사서 그 친구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오기로 한 다른 친구들이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게 아닌가. 그 동네 지하철역이 워낙 복잡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친구는 길 잃은 부산 총각들을 데리러 가고, 나는 출구 앞에서 짐을 지키고 있었다. 좀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거나하게 취한 20대 후반 남자 둘이 길을 물어왔다. 이 복잡한 동네에서 술까지 취했으니 헷갈릴 만도 하지. 성의껏 설명을 해줬는데 다짜고짜 내가 사투리를 쓴다며 발길질을 하고 주먹까지 휘둘렀다. 아무리 취했어도 상대는 둘. 이만하면 줄행랑을 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난 지키고 있는 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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